지난 달 20일 존슨앤드존슨 이노베이티브 메디슨(옛 얀센)은 유한양행에서 기술을 이전받은 폐암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와 기존 약물의 병용요법으로 미국 FDA 승인을 획득했다. 전체 폐암의 85%를 차지하는 비소세포암 치료제로서 탁월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렉라자의 최대 경쟁제품인 아스트라제네카사 타그리소의 지난해 매출이 7조7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렉라자는 국내 신약 최초로 연매출 1조원 이상인 글로벌 블록버스터에 등극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신약개발은 국내 바이오 기업 제노스코에서 개발한 후보물질인 레이저티닙을 유한양행이 이전받아 국내 임상을 진행하였고, 유한양행에서 글로벌 제약사 얀센에 기술을 수출해 글로벌 임상과 FDA의 최종 승인까지 완주한 신약개발 분야 개방형 혁신 전략의 성공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사례를 통해 한국의 제약산업과 울산의 전략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시초는 1897년 동화약방(동화약품의 전신)의 설립으로 볼 수 있다. 아직도 판매되고 있는 ‘활명수’는 당시 궁중에서 복용되던 생약 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하여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다. 동화약방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시기에 민족제약기업인 유한양행, 금강제약소, 삼성제약소 등이 태동하였다.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던 소독제인 빨간약(옥도정기, 아까징끼) 등이 이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명맥을 이어오던 제약기업들의 생산기반을 초토화시켜 잿더미에서 새출발을 해야만 했다. 약품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1962년을 전후로 의약품 국산화를 위한 기반구축을 시작하였다. 국민들의 보건의료 향상을 목표로 값비싼 완제품 의약품을 수입하는 대신 저렴한 원료물질을 수입하여 완제품을 생산하고 보급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이러한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면 제약사들은 선진국에서 검증되고 특허가 만료된 복제약을 생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외국 기술을 도입하고 합작투자를 통해 빠르게 의약품 국산화가 진행되어 제약산업은 1960년대 후반부터 연평균 30%이상의 고도 성장을 이뤄냈다. 한국 제약기업들의 빠른 성장과 의약품 보급을 통해 우리나라의 의료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와 동반하여 식약처는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의약품을 국내에 빠르게 보급하기 위한 역량을 키워왔고, 인허가를 위한 국내 병원에서의 임상도 국내 보급에 초점을 맞춰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국내시장의 제한된 규모와 선진화된 의료 현실로 인해 복제약을 생산하는 방식의 제약산업은 성장의 한계를 마주하게되었고, 혁신적 신약개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되었다. 신약개발은 장기적이고 천문학적인 투자가 요구된다. 통상 10년 이상의 개발기간과 조 단위의 투자를 통해 하나의 신약이 개발되는 것이 현실이다. 약 1만개의 신약 후보물질들이 임상과 인허가 과정에서 걸러져서 하나의 신약이 시장에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 이러한 신약개발은 불가능하다. 식약처는 신약을 검증하고 승인을 검토하기에는 인허가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 병원들도 글로벌 기준에 적합한 임상을 추진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국내 제약사의 규모로는 글로벌 임상과 미국 FDA 승인을 추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렉라자의 사례를 보자. 작은 규모의 바이오기업인 제노스코에서 시작되었다. 2000년 창업한 기술기업이 2009년 제노스코로 사명을 바꾸고, 연구개발을 통해 레이저티닙을 개발하여 2015년 유한양행에 기술이전하였다. 이 후 글로벌제약사인 얀센과 협업으로 지난달 드디어 FDA 승인을 받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울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울산에는 제약회사가 없다. 하지만 제노스코와 같은 혁신적 기술을 가진 바이오기업들을 키워낼 수는 있다. 울산에는 몇 개의 유망한 바이오기업들이 세계시장 진출을 꿈꾸며 신약후보물질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글로벌 제약회사나 해외 유수의 병원들과 협력 플랫폼이다.
<본 칼럼은 2024년 9월 11일 경상일보 “[배성철 칼럼(2)]울산의 미래 신산업 바이오의료산업에 대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