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였다. 서울의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의 대도시 한복판에 사람들은 탄핵 표결 당일 오전부터 모여 있었다. 각자 가져온 형형색색의 케이팝 응원봉은 물론, 다채로운 깃발도 눈에 띄었다.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뒤로 미루기 연합회’ ‘낙동강 오리알 모임’ ‘걷는 버섯 동호회’ 등 해학이 넘치는 문구가 적힌 깃발이 차가운 바람을 타고 휘날리고 있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12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다시 만들 세계’를 꿈꾸었다.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우며 즐겁기까지 한 시위를 목격한 해외 언론은 연일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특히 놀라웠던 것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 행위의 등장이다. 시위에 직접 가지 못한 사람들은 카페나 음식점에서 시위 참여자들이 공짜로 다과나 음식을 소비할 수 있도록 적으면 몇십 개에서 많으면 몇백 개까지 대량 선결제해 두었다.
프랑스나 미국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푸드 트럭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와 여행을 가는 대신 그 돈으로 작은 버스를 대여해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이 기저귀를 갈거나 아이와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했고, 여기에 기저귀와 물휴지를 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선결제를 통해 기부하는 행위는 물자 교환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경제 인류학적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그의 대표적 저서 ‘선물 (The Gift)’에서 선물이 진정한 ‘공짜’는 아니며 언젠가는 갚아야 할 의무를 창출하며, 이를 통해 상호 유대감 형성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에 시위 현장에서 목격한 선물 행위는 단순한 부채(負債)의 교환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위의 선물 경제는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시장 주도 논리로는 적절히 이해하기 어렵다. 상품과 서비스 교환을 통한 계약 관계가 아니라, 약한 자들이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격렬한 경쟁과 개인주의, 각자도생으로 특징지어지는 최근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이러한 선물 행위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또 다른 방법이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인을 신뢰하고 배려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더 나아가 선물하기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동과 극명히 대조되는 행위이다. 몇몇 정치인들의 행동은 종종 국민 대다수보다는 자기 이익이나 정당만을 보호하려는 열망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위대가 관대한 행동을 통해 공동체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반면, 일부 정치인들은 정치적 셈법에 몰두할 뿐이었다. 따라서 이번 시위에서 볼 수 있는 선물 행위는 단지 필요에 대한 실용적 대응이라기 보다는 ‘저항’의 한 형태인 것이다. 종종 사람보다 권력을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였던 정치인들에 대해 조용하지만 강력한 비판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에도 우렁차게 울려 퍼진 국민의 목소리 덕택에 가까스로 젊은 군인들이 다수의 국민을 적으로 상대해야 할 일도 막을 수 있었고, 급기야는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가결에 이르러, 급한 불은 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12월3일 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그 후 모든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 대하여 의문과 불신과 불안을 떨칠 수 없다. 동시에 자유민주주의란 이토록 힘겹게 지켜내야 하는 것임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깃발은 단순히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나 새로운 시위의 장면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의 탄생을 의미한다. 정치계는 더 이상 ‘예전에 해봤던’ 정치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말고, 새로운 세대가 어떤 세상을 다시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길 바란다.
<본 칼럼은 2024년 12월 18일 경상일보 “[최진숙의 문화모퉁이(18)]다시 만들 세계”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