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도 기업도 지역도 국가도 변화에 앞서가려면 ‘모방형 혁신’에서 ‘선도형 혁신’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선도형 혁신은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가거나 새로운 길을 만드는 ‘차이’에서 나온다. 그런 선도형 혁신이 ‘실패를 통한 학습(learning by failure)’과 같은 뜻이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혁신이론에는 몇 가지 명제가 있다. ‘혁신은 실패의 함수다(관용성의 명제)’ ‘혁신의 씨앗이 되는 돌연변이는 다양성에서 나온다(다양성의 명제)’ ‘개방성은 경쟁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기회의 창이 된다(개방성의 명제)’가 그것이다. ‘관용성(tolerance)’, ‘다양성(diversity)’, ‘개방성(openness)’은 혁신사회로 가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3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기도 하다.
이 명제들의 밑바탕에는 철학자들의 사고가 있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차이’와 ‘생성’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다. 그는 차이 자체가 존재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의 ‘탈(脫)중심적 사고(rhizome)’는 수평적이고 연결적인 네트워크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산한다.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다양성이 존중받는다.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은 곧 ‘창조적 운동’이다. 그가 말하는 ‘탈주선(line of flight)’은 고정된 구조를 깨고 새로운 가능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몸부림의 과정이다.
대전환 시대의 대전환은 기존에 있던 것들이 대거 없어진다는 뜻이다. 사라질 것에 집착해 붙들고 있다가는 앉아서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도망쳐라, 도망쳐라, 어디까지든.” 전례 없는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 아사다 아키라가 <도주론>에서 대전환을 ‘정주하는 문명에서 도망치는 문명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이유다.
도망친다는 것은 망설이지 않고 변화로 달려간다는 것이다. 같은 종(種)이라도 차이가 나는 게놈(유전정보)의 존재가 많을수록 환경이 급변(急變)하고 만변(萬變)해도 누군가는 용케 적응해 살아남을 가능성이 올라간다. 같은 게놈을 가진 복제 집단이 단기적으로 효율성이 높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공멸로 직행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경영학자들도 비슷한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기업이 생존하려면 ‘동질성(homogeneity)’이 아니라 ‘이질성(heterogeneity)’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논문들이 그것이다.
새로운 생물이 대거 출현한 것은 환경이 엄청나게 바뀌면서 수많은 생물이 사라진 뒤였다. 약 5억4100만년 전부터 4억8500만년 전까지 생물의 다양화가 일거에 일어났다는 ‘캄브리아기 대폭발’도 그렇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환경이 격변하면서 다양한 세포 시스템이 적응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올 만하다.
대전환 시대를 맞아 한국은 캄브리아기 대폭발 급(級)의 다양화를 준비하고 있는가? 한국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 플랑크톤이 많아지고 어류가 몰려든다는 미래의 ‘조목(潮目)’을 과연 몇 개나 보유하고 있는가? 생물의 다양화든 산업의 다양화든 본질적으로는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우리가 남이가?” 동질성의 문화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국을 꿈꾸는 새로운 한국인의 성장동력이 될 수 없다. 한국인 1.0(과거), 한국인 2.0(현재)에서 한국인 3.0(미래)으로 가겠다면 우리는 기꺼이 남이 되어야만 한다. 차이 때문에 등을 돌리는 남이 아니라 그 차이 때문에 더 다가가는 그런 남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는 살아남아 한국을 지켜나갈 테니 말이다.
울산은 ‘태화강의 기적’으로 한국에 ‘한강의 기적’을 안긴 자랑스러운 도시다. 제2 태화강의 기적은 ‘차이’와 ‘생성’에서 나올 것이다. 울산의 미래자산 UNIST는 그 차이와 생성의 샘물이다. ‘지식기업(knowledge enterprise)’ ‘연구기업(research enterprise)’으로 대학의 사명을 다할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다. 울산이 새로운 산업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진원지가 되는 날, 한국이 확 바뀔 것이다.
<본 칼럼은 2025년 1월 7일 경상일보 “[안현실 칼럼]‘차이’와 ‘생성’이 울산의 미래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