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격형 사고의 기초연구 논의 지양
한국에서 지금까지의 기초연구 논의가 대체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세 줄로 요약한다.
1) 주요국가의 총연구개발비 중 기초연구 비중을 살펴본다: 국가별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10~20%대에 이른다.
2) 주요국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주체를 기준으로 기초연구의 비중, 특히 대학의 수치를 살펴본다: 주요 선진국(50~60%) 대비 한국(40% 이하)은 대학 기초연구 비중이 낮다는 점이 바로 포착된다.
3) 결론을 제시한다: 한국의 기초연구 비중은 선진국 수준으로 따라가고 있으나 절대 규모에서 본 양적 투자는 여전히 부족하고(특히 미국과 비교해), 문화적·구조적으로 기초연구 환경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진단한다. 선진국의 각종 모범사례를 쭉 열거한 후 한국도 선진국처럼 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런 식의 기초연구 논의는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다. 선도와 창의를 말하면서 늘 선진국을 끌고 들어와 우리는 그들보다 못하니 빨리 쫓아가야 한다는 ‘추격형 사고’는 그 자체로 이율배반적이다. 전혀 선도적이지도 창의적이지도 않다.
지금까지 해오던 기존의 논의를 의심하고, 우리 스스로 가능성과 자유를 갖고 독창적으로 대학과 기초연구를 고민해 볼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왜 존재하는지, 기초연구는 왜 하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를 생각하면 이제는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한다.
2. 무엇이 기초연구인가: 통계의 한계와 근본적인 질문
먼저 기존에 우리가 정의한 기초연구(Basic research), 응용연구(Applied research), 개발연구(Development)의 정의가 지금의 환경과 상황에 맞는지 의문을 가져보자.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구분할 때 주로 ‘연구자의 동기나 목적’을 보지만, 정작 연구 결과는 이와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다. 시작은 공공재 성격의 순수한 과학지식을 창출하는 기초연구였지만, 결과는 놀라운 상업적 응용기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인류를 구한 진단 및 백신도 당장의 용도와 목적, 시장이 불명한 데도 어디선가 해온 연구들이 빛을 보게 된 사례에 해당한다. 거꾸로 시작은 상업적 응용기회를 염두에 둔 응용연구였지만, 그 과정에서 놀라운 과학적 성과가 결과로 나올 수도 있다. 파스퇴르는 와인 관련 응용연구의 성과로서 세균학의 기초를 만들었고, 카르노는 증기기관 효율화 연구의 부산물로 열역학을 창시했다. 기초연구가 언제 미래의 응용연구, 개발연구로 이어질지, 또 산업적 응용과정에서 어떤 놀라운 과학적 성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사실은, 과학과 기술의 평가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명확히 확인시켜 준다.
물론 기초연구, 응용연구를 구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정책적인 이유가 있다. 정부의 연구지원기관(Research Funding Agency) 입장에서 기초와 응용의 구분은 공공과 민간의 역할 구분의 잣대가 된다. 사실 과학기술 정책 프레임은 대학, 기업, 정부연구소 등 연구개발 주체별로 그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생긴다. 기초와 응용을 연구수행주체의 역할 분담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은 과연 적절한가의 문제다. 많은 중요한 과학적인 성과가 기업의 응용연구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Bell Lab, IBM, GE, Dupont 등 미국의 기업은 다수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산업적 영감에서 온(industry-inspired) 기초연구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구분은 과학기술정책 프레임의 니즈에 맞춘 통계적 목적의 인위적 구분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게다가 최근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통계적 수치가 있다면, 기업, 특히 대기업의 기초연구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 입장에서 대기업의 기초연구를 어떻게 해석하고, 상호 간 선순환을 가져올지는 뒤에서 다시 언급될 것이다.
3. 대학의 기초연구가 직면한 과거와 다른 도전
이제 ‘대학의 기초연구’에 대해서도 현실을 직시해보자.
대학의 기초연구가 직면한 환경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먼저, “대학만이 기초연구를 할 수 있다”는 가설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 기업, 특히 대기업이 기초연구 투자를 늘리고 있다. 첨단산업에서 경쟁하는 기업은 이른바 ‘선점자 이익(first mover advantages)’ 확보를 위해 위험성이 높은 기초연구 투자에 나서고 있다. 기업의 다운스트림 쪽 개발연구가 거꾸로 업스트림 쪽으로 올라가면서 기초연구로 확장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정부가 기초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가설도 의심받고 있다. 미국은 이미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민간연구재단들이 많다. 록펠러재단,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빌 앤 맬린더 게이츠 재단 등은 거액의 자산을 바탕으로 많은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등이 있다. 대학이 더 이상 정부만 바라볼 게 아니다. 이미 경험했듯, 정부만 쳐다보고 있다가는 과학기술 예산의 획일적 감축과 같은 돌발적인 정치적 변수가 발생했을 때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쑥대밭이 되고 만다. 정부에 의존하지 않은 기초연구의 새로운 가설을 향한 질문이 나와야 할 때다.
이것 말고도 상당한 도전들이 있다. 인구증가 시대의 기초연구에서 인구감소 시대의 기초연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학의 연구실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대학이 이 위기를 돌파하지 못하면 기초연구도 없다.
AI가 기초연구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점도 엄청난 변화요, 도전이다. AI 시대 누가 연구자이며, 연구란 무엇인가?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개인, VC(벤처캐피털), 민간비영리법인 등이 기존의 산·학·연이라는 좁은 틀을 깨고 혁신의 새로운 주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학은 전례 없는 이런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4. 대학이 기초연구의 중심축이 되기 위한 과제
대학이 직면한 기초연구의 도전과 과제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할 주체는 어디까지나 대학이다. 여기서는 답을 제시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일례로, 박종래 UNIST 총장은 2025년 신년사를 통해 대학의 ’전환적 연구(transformative research)’ 필요성을 강조하며 주목할 만한 화두를 던졌다.
“전환적 연구는 기초연구와 실용·응용 연구의 균형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쌍방향의 연결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루이 파스퇴르형 연구’다. 미래 첨단산업형으로의 지역 산업 재구조화 등을 촉진하는 ‘스케일-업 연구 플랫폼’이 구축되도록 하겠다. 스타트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기술이전이 활성화되도록 하겠다.”
대학이 기초연구를 포함한 연구에서 자기 자리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나온 해법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기초연구 우위, 기업은 응용연구와 개발연구 우위에 있다. 하지만 기업이 업스트림 쪽의 기초연구 니즈를 느끼고 치고 올라오는 환경에서, 대학이 다운스트림 쪽의 응용연구와 개발연구로도 눈을 돌리면서 상호 시너지를 극대화한다고 상상해 보라. 대학과 기업이 각자의 비교우위 강화와 함께 산학협력을 통한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기초연구의 필요성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부인하지도 않는다. 당장의 용도, 당장의 상업적 응용 기회가 안 보인다고 기초연구를 하지 않는다면 지식 자체가 생산될 수 없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도 없다. 지식 탐구가 없다면, ‘창의를 혁신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일어날 공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부카(VUCA,Volatility·Uncertainty·Complexity·Ambiguity)’라는 표현도 부족할 대전환 시대를 돌파하려면 더 많은 기초연구가 요구된다. 대전환 시대에는 알려진 문제(용도)에 대한 ‘답’을 내는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알 수 없는 문제(알 수 없는 용도)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답보다 질문이 더 절박한 시대다. 질문은 호기심에서 나온다. 그래서 다양성이, 과학이, 그리고 과학자가 필요하다. 특히 ‘one of them’을 싫어하고, 남이 안 하는 것을 하려고 하고, 오로지 알고 싶어(비효율적이더라도) 기꺼이 시간을 투입하고, 흥미로운 것을 선택하는 자유를 추구하고, 무(無)에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리고 그 결과에 감동하고, 하나하나 사실로 드러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기본적으로 미래를 낙관하는, 그런 과학자들 말이다.
또한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대전환 시대의 사회가 요구하는 대학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누가 제시할 수 있을까? 그것이 대학의 시대적 임무다. 기업인들이 대학을 부르는 별칭이 있다. 바로 ‘지식기업(knowledge enterprise)’, ‘연구기업(research enterprise)이다. 당장의 생존과 성장을 걱정해야 하는 기업인들이 대학을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지식과 연구로 길을 밝혀달라는 것이다. 기업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대학에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인류는 2060년경 100억 인구를 정점으로 본격적인 인구감소 시대로 접어들 전망이다. 기후변화가 몰고 오는 변화는 그 규모와 범위, 깊이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다. 이런 배경에서 AI혁명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대전환, 친환경 에너지로의 대전환은 인류가 가야 할 길임이 분명하다. 어떻게 갈 것인가와 더불어 그 과정에서 개인·기업·국가 간 격차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지금에 이르렀는데 과거에 보지 못한 전례 없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고 다시 과거로 돌아18갈 수는 없다. 새로운 도전 또한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는 과학자, 기술자에게만 맡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시민은 물론이고 지역, 국가, 세계 차원의 지지와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런 지지와 참여가 있을 때 과학의 역할을 요구하는 사회적 니즈에 대학도 발벗고 부응할 힘이 생길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기초연구 투자를 많이 하고, 중국이 기초연구에서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이 인류가 가진 지적 호기심의 전부를 다 앗아가지는 못한다. 미국 인구는 3억3천만 명 정도이고, 중국은 14억 명에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인구는 80억 명이다. 미국과 중국 밖에 있는 인구가 훨씬 많다. 그중에는 한국의 5천만 명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인의 지적 호기심은 기초연구의 소중한 인프라가 된다. 더구나 한국은 제조업 등 산업적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보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다. 산업적 경험과 영감을 기초연구 쪽으로 확장해 나간다면(industry-inspired basic research), 그 분야에서 한국만큼 잘할 곳도 없다.
한국에서 대학과 기업이 손을 잡으면 본래적 의미의 기초연구는 물론이고 산업적 영감에서 오는 기초연구를 치고 나갈 수 있다. 혼돈의 시대라고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초연구도 환경변화에 따라 진화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도 이에 맞춰 ‘공진화(co-evolution)’을 위한 방향성을 찾아내고 준비해야 한다. AI가 기초연구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는 지금이 한국이 치고 나갈 절호의 기회다.
<본 칼럼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2025년 신년호(겨울호) 안현실 UNIST 연구부총장 기고문 “한국 대학이 직면한 기초연구의 도전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