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상 수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들을 제시했다. 먼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 문학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과학분야의 노벨상 발표는 전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과학분야 노벨상은 기초과학인 물리, 화학, 생물 분야의 중요한 성과 중에서 선정한다는 통념을 깨고 물리학상과 화학상 모두 인공지능(AI)을 개발한 연구자들에게 주어졌다. 물리학상은 AI의 중요한 개념인 기계학습을, 화학상은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고 새로운 단백질을 디자인할 수 있는 AI를 선정했다. 이번 선정은 AI가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AI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2016년에 있었던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와의 대결을 떠올린다. 1997년 IBM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후 AI 개발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동양문화의 정수이고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둑으로 넘어왔다. 대국 전 이세돌씨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이세돌씨가 제4국을 이긴 것이 오히려 대단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것을 계기로 우리는 AI, 기계학습, 신경망 등의 용어들을 접하게 되었고, 이 후 AI 기술은 급격한 발전을 이뤄가고 있다. 특히 최근 GPT 등의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AI는 특정 분야에서만 활용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일상에서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가고 있다.
의료와 바이오산업도 이러한 AI의 파괴적 혁신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분야에 비해서 AI가 몰고 올 가장 큰 변화의 중심에 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이번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알파폴드 2와 로제타폴드는 생명현상과 질병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물질 중의 하나인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할 뿐 아니라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디자인할 수 있는 AI다.
참고로 알파폴드 2는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CEO인 데미스 허사비스 팀이 개발하였고, 허사비스도 이번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이다. 기존의 생명과학 연구에서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풀기 위해 단백질을 분리 정제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됐고, 방사광가속기, 전자현미경 등 고가의 연구장비들이 총동원됐다. 하지만 이제 AI는 기존에 밝혀진 단백질 구조를 학습함으로 미지의 단백질 구조를 비교적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고 새로운 신약 후보물질을 직접 디자인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여전히 구조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실험데이터의 보완과 예측결과의 검증과 개선의 여지는 남아있지만, AI 기술은 단백질 구조를 밝히는 데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AI는 의료와 바이오산업에서 다양한 혁신의 중심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AI분야에 약 720조원을 투자하기로 발표한 자리에서 세계적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은 AI의 대표적 타깃으로 암 정복을 포함한 신약과 백신개발을 예로 들었다. 이전 칼럼에서 신약개발이 천문학적인 투자와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논의한 바 있다. 새로운 신약물질을 발굴하고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해가는 과정이 AI를 이용해 실패의 확률을 낮추고, 신물질 발굴을 위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제약회사 연구실 비커에서 개발되던 신약이 의료 및 과학기술연구 데이터에 기반해 새로운 신약을 디자인하고 이미 개발돼 사용되는 약물의 새로운 용처를 찾는 약물 재창출 등으로 또 다른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지난 20일 우리 정부도 국가 AI위원회에서 과감한 AI 인프라 투자, 유니콘 육성을 위한 정책금융 지원과 의료를 포함한 고품질 공공데이터 개방을 발표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번 결정에서도 보듯이 AI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데이터이다. 고품질 데이터를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는 중요한 경쟁력이 되었다. 다음에는 데이터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본 칼럼은 2025년 2월 26일 경상일보 “[배성철 칼럼(6)]AI가 몰고올 의료·바이오산업의 파괴적 혁신”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