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는 ‘불확실성’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리스크(risk)’ ‘모호성(ambiguity)’ ‘완전 불확실성(true uncertainty)’이다. 리스크는 확률분포를 전제로 하기에 최적화(stochastic optimization)가 가능하다. 모호성도 첨단수학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문제는 완전 불확실성이다.
앞으로 10년 또는 30년 후 인공지능(AI) 울산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뇌는 오류투성이라지만, 앞이 안 보이는 미래를 예측하고 예측 오차를 수정한다. 인간은 그렇게 생존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개척자의 도시 울산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론이 있다. 하나는 현재를 출발로 삼아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를 전망하는 ‘포캐스팅(forecasting)’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소망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그 미래를 거꾸로 현재로 끌어오는 ‘백캐스팅(backcasting)’이다.
이 방법론의 차이는 크다. 현재를 출발로 미래를 전망하면 ‘연속성(continuity)’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현재를 개선하는 ‘점진적·지속적 혁신(incremental or sustaining innovation)’이 주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미래를 상상하고 거꾸로 현재를 쳐다보면 단절이 필요한 ‘불연속성(discontinuity)’이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급진적·파괴적 혁신(rapid or disruptive innovation)’의 수요가 생겨난다.
일단의 경영학자들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두 부류로 나눈다. 현재를 보고 미래를 바꾸는 기업가와 미래를 보고 현재를 바꾸는 기업가다. 전자는 스티브 잡스가, 후자는 미국에서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론 머스크가 꼽힌다. 잡스는 한때 우리가 쓰던 통신용 휴대폰을 보고 지금의 스마트폰으로 대중화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머스크는 전기차가 다니는 미래를 상상하고 현재의 자동차 개념을 바꾸는 중이라는 점에서 각각 그렇다. 미국이 부러운 것은 이 두 부류의 기업가들이 기존산업 전환과 신산업 창출에서 ‘쌍끌이(twin-track)’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진적 혁신도 중요하고, 파괴적 혁신도 중요하다. 현재를 보고 미래를 바꾸는 기업가도 중요하고, 미래를 보고 현재를 바꾸는 기업가도 중요하다. 이 가운데 한국의 가장 약한 고리는 급변하는 대전환 시대가 요구하는 ‘파괴적 혁신’과 ‘미래를 보고 현재를 바꾸는 기업가’다.
미래는 전망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현재를 기준으로 예상하는 미래 산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연속선 상의 미래 산업도 물론 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미래 산업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소망하는 10년 또는 30년 후 AI 울산의 모습을 그려보고 현재의 울산을 돌아보자. 어쩌면 울산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산업이 AI 울산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결론이 나올지 모른다.
‘핵심 역량성(core competency)’과 ‘핵심 경직성(core rigidity)’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환경이 급변하면 애지중지하던 보배가 앞을 가로막는 짐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 상장 기업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AI 미래 전망도 현재의 기술에 제한받을 이유가 없다. 붐을 이루고 있는 생성 AI는, 작은 샘플과 적은 에너지로 학습이 가능한 인간의 뇌와 달리 거대한 데이터와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또 다른 구조(architecture)의 제3, 제4의 AI가 등장할 수 있다.
AI 울산의 미래는 우리 상상력에 달렸다. 백캐스팅은 울산이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떤 새로운 기업가를 필요로 하는지를 파악하는데 유효하다. UNIST는 백캐스팅을 통해 AI 울산과 한국, 세계가 그리는 미래이고 싶다. “우리 모두 개척자여야 한다(we are all pioneers).” UNIST의 새로운 슬로건이다. 개척자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외침이다.
<본 칼럼은 2025년 3월 25일 경상일보 “[안현실 칼럼]‘백캐스팅(backcasting)’으로 상상하는 미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