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봤을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에서 도라에몽은 22세기 미래에서 현재로 찾아온 로봇이다. 미래를 미리 가보고 싶어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본능이다. 변화를 멈추면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년 1월 미국 CES, 2월 스페인 MWC, 4월 독일 하노버 메세. 세계의 기업인에게는 이 3대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것이 연례행사가 됐다. ‘전시회는 미리 가보는 미래’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한 단면일 것이다.
최근들어 3대 전시회가 서로 닮아간다는 평가다. 디지털·인공지능(AI)을 한 축으로, 에너지·탄소중립을 또 하나의 축으로 미래를 보여준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따지고 보면 놀랄 것도 없다. 인류가 사족보행에서 이족보행으로 진화한 결정적인 이유부터 그렇다. 새로운 먹이를 찾아 숲을 떠나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더 멀리 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해석이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18세기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장이 새로운 에너지로 새로운 경제를 열어온 것이 지금의 자본주의다. 증기기관과 석탄, 석유와 전기·자동차, 정보혁명과 원자력·재생에너지, 빅데이터·AI와 탄소중립 에너지….
이 시대 자본주의 이노베이션은 AI와 신(新)에너지가 핵심 변수인 함수다. “에너지가 AI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그동안 AI 성능 경쟁을 주도해온 오픈 AI의 CEO 샘 올트먼의 이런 고백이 필연적으로 들리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본주의 기본운동 원리의 재확인에 다름 아니다.
AI의 전력문제는 모두가 정확히 공개하기를 꺼리고 있지만,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초거대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만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챗GPT에서 한 번의 문답(쿼리)으로 소비되는 전력은 시간당 약 2.9W로 추정된다. 0.3W 정도인 구글 검색과 비교하면 약 10배에 달한다.
한 분석에 따르면 매주 평균 1억명의 사용자가 각자 15회 챗GPT를 이용한다고 가정할 때 연간 전력 소비가 시간당 약 2억3000만㎾다. 약 300만대 전기자동차를 가득 충전할 수 있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향후 전력 확보가 AI의 보급과 확산의 최대 관건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변동성을 안고 있는 재생에너지로 탈(脫)탄소화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라면 해결할 문제는 더 늘어난다. 잉여전력과 출력제어 등 전력 인프라 부하, 비용 문제 등 일일이 적시하기도 어렵다.
미국과 중국 간에 엄청난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전력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서울 정도다. 한국이 이런 글로벌 트렌드를 치명적 위협으로 느낀다면, 에너지 생산과 사용방법의 근본적인 혁신이 발등의 불이다. 당장 탈탄소 에너지 적지(適地)와 대규모 전력 수요지의 불일치 문제부터 그렇다. 한 가지 타개책은 탈탄소 에너지 적지에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등 차세대 산업의 유치를 국가 차원에서 강력히 유도하는, 산업입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를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지산지소(地産地消)’는 송전망 증강에 소요될 막대한 투자와 시간을 줄이는 효과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첨단산업의 지형도가 변하고 지역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면 대한민국의 산업과 경제는 일대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탈탄소 에너지 적지와 데이터센터 입지가 결합하면 AI 전환과 그린 전환을 연계하는 ‘쌍전환 순환적 혁신’의 대실험이 가능하다. AI는 탈탄소 에너지의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린 전환의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핵심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력 인프라와 통신 인프라의 융합·연계라는 또 하나의 혁신을 촉발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울산은 AI와 신에너지를 양대 축으로 지역혁신을 증명해 줄 최적 모델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울산의 자동차·조선 등 미래 모빌리티까지 가세한다고 해 보자. AI, 에너지, 모빌리티의 융합·연계는 다가오는 미래 기술도시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공화국 울산.’ 역사는 한국에서 산업 자본주의의 신화도 그랬지만, AI 자본주의도 울산에서 시작돼 국가 전역으로 확산됐다고 기록할 것이다.
<본 칼럼은 2025년 7월 15일 경상일보 “[안현실 칼럼]새로운 기술공화국을 꿈꾸는 울산”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