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퇴한 구도심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도시재생전략과 사업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도시재생의 부작용으로서 지역 상권 활성화를 이끈 문화예술인과 기존 상인들이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해당 지역에서 밀려나가는 일명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본래 노후하고 쇠퇴한 도심부 주변 근린지역으로 저렴한 임대료와 높은 문화·상업활동 접근성을 선호하는 문화예술인, 전문직 등 중산층 계층이 이주해오면서 근린이 재활성화되는 반면, 주택가격이 상승하게 되어 기존에 거주하던 저소득 주민들이 밀려나가게 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주거보다는 상업 기능의 관점에서 임대료 상승에 따른 문화예술인과 소상공인들의 비자발적 이주 문제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가 되는 서울의 홍익대학교 앞,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등은 주요 상권의 주변부에서 신흥 상권으로 자리매김한 지역들이다. 신촌, 압구정, 이태원 등 서울의 대표적인 상권의 주변부였던 이들 지역은 이국적인 카페와 레스토랑, 소규모 문화예술 공연장, 패션숍 등이 점차 입점하고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면서 초기 상권을 형성하였다. 상업과 문화요소가 결합된 이들 지역은 SNS를 통해 장소가 널리 홍보되면서 유동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여 단기간에 대표적인 신흥 대형 상권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임대료 또한 급상승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존 상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이 점차 밀려나가고 대형 프랜차이즈 중심의 상업 공간으로 재편되면서 지역 고유의 장소성과 정체성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울산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중구 문화의 거리 등 도시재생 사업지역에서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기존의 상인과 문화예술업소들이 밀려나가는 현상이 시작되고 있다.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상업활동을 기반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 성장, 발전하는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파생된 서울지역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상업수요가 낮은 울산에서는 공공주도의 도시재생사업 시행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도시재생을 위한 공공 부문 투자 혜택이 기존 지역주민과 소상공인이 아닌 토지와 건물주들에게만 돌아가게 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을 위하여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건물주와 임차인 간의 상생협약, 공공이 직접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임차하여 소상공인과 문화예술인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사업, 건물주에게 낡은 상가 보수비용을 지원해주고 대신 건물주는 일정 기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임대기간을 보장하는 ‘장기안심상가’ 사업 등 정책수단을 마련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조례’로 제정하였다. 서울시 성동구에서는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마련하고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하여 건물주의 상생협약을 유도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은 공공이 건물주와 지역주민, 임차상인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임대료 갈등 해소 및 지역 활성화를 위한 상생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담당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상업지역 젠트리피케이션의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는 특성을 고려할 때, 사회적 갈등과 문제가 발생한 후 대응책을 논의하게 되면 ‘사후약방문’이 될 수밖에 없다. 울산시는 작년 말 도시재생전략계획을 확정하고 본격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시행하려고 한다. 지역 고유의 정체성과 장소성을 살리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하여 울산형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조사와 예방적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정섭 UNIST 교수
<본 칼럼은 2016년 3월 25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울산형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