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년 일본을 찾아온 미국의 매슈 페리 제독이 탑승한 함대는 미시시피호였다. 1945년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에 동원된 함대는 미주리호였다. M으로 시작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일본 지식인의 역사 회고를 접하다 보면 이렇게까지 의미 부여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의문은 마지막에 가서 풀린다. 모든 것이 새로운 각오를 끌어내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다.
일본 지식인들이 또 M을 말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매서운 공세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이 잊지 못하는 또 하나의 M이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떠올리며 이렇게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을 다시 위대하게’(MJGA)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일본은 미국과 더욱 밀착 관계(일본은 미국과 같이 판을 짜야 한다는 진영)로 나아갈까, 아니면 그들의 M을 찾아 나설까.
MAGA는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관용적이던 슬로건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노골적인 미국주의로 변했다. 미국의 M에 중국은 그들의 M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중국 공산당이 숭배하는 M, 카를 마르크스부터 그렇다. 마르크스는 죽었지만 여전히 소환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새로이 들고 나온 ‘신질(新質)생산력’이 그렇다. 마르크스의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시진핑 얼굴에는 또 다른 M이 엿보인다. 마오쩌둥이다. 마오의 영국·미국 추월 구호가 ‘중국 제조(Made in China) 2025’로 재현됐다는 해석이 있다. 이는 미국의 M을 자극했다.
중국 제조 2025를 보는 다른 시각도 있다. 디지털화로 제조업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 역류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중국 의도와 달리 이는 미국의 MAGA를 불러들였다. MAGA는 다시 중국의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미·중의 상호 위기감이 중국의 ‘비선형적 혁신모델’을 낳고 있다는 논문이 나올 정도다. 어쨌든 ‘중국몽’이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MCGA)인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정학적으로 21세기 미·중 충돌은 ‘해양’을 둘러싼 M의 전쟁이다. 해양 패권론의 논리를 제공한 또 하나의 M이 있다. 미국의 전략가 앨프리드 머핸이다. 머핸의 키워드는 두 가지다. 바다를 장악할 해군력(함정, 병참보급기지 등)과 무역을 할 상선(조선업, 항만, 선원 등)이다.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가설은 이렇게 나왔다. 미국은 해양 패권을 거머쥐었다. 중국도 이 가설을 따라 해군력 강화, 대만과의 양안 통일 추구, 지배 해역 확대로 나오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모빌리티로 위장한 중국의 M이다. 미국도 중국도 물러설 수 없는 ‘M의 신(新)지정학’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앞으로 100년이 갈지도 모를 미·중 충돌에 끼여 우리 미래세대가 눈치 보며 살게 할 수는 없다. ‘전략적 모호성’이냐, ‘전략적 명료성’이냐의 논쟁은 부질없다. 이분법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구나 한국이 종속변수라는 점에서는 어느 쪽이든 다를 것이 없다.
한·미 관세협상에서 정부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카드로 활용했다. 국민은 묻고 있다. ‘MKGA’(한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비전은 어디에 있냐고. 한국은 미국의 51번째 주가 아니다. 중국의 24번째 성도 아니다. 주권국가라면 ‘전략적 존재성’을 추구해야 마땅하다. 전략적 존재성은 전략적 자산이 있을 때 가능하다. 정부는 인공지능(AI) 3강을 내세웠다. 핵심은 숫자의 등수가 아니다. 등수를 매길 수 없는 전략적 자산이 한국을 지키는 경제안보다.
마지막 질문이다. 한국은 M의 전쟁 속에서 어떻게 국력을 키울 것인가. 이재명 정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강조하고 있다. 역대 정부를 보면 알겠지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 같은 말도 자세와 태도에 따라 공감과 신뢰는 천지 차이다. 한낱 수단이 되고 싶은 인재는 없다. 인재는 다양성과 개방성, 포용성을 보고 이동한다. M의 전쟁은 ‘머니’(Money)를 넘어 ‘마인드’(Mind)를 묻고 있다.
<본 칼럼은 2025년 9월 12일 한국경제 “[다산칼럼] 그들은 ‘M의 전쟁’이라고 부른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