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언어모델(LLM) 같은 ‘아름다운 인공지능(AI)’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공장 생산성을 높이려고 기름때 묻은 데이터로 밤새워 씨름하는 ‘땀내 나는 AI’도 필요하다. 부처마다 화려한 AI 정책을 쏟아내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책상머리 AI’로 느껴진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정부위원회가 멋진 기획에 집착할수록 ‘현장머리 AI’와 거리가 멀어진다는 비판도 들린다.
지방자치단체가 저마다 지역산업의 AI 전환을 앞세워 중앙정부에서 대규모 예산을 받아내려고 혈안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동안 중앙정부가 주도한 수많은 지역혁신 사업이 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는지 이제라도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자생적 지역혁신 생태계 없이는 모든 게 허사다. 거꾸로 말하면 지자체와 기업, 대학, 이른바 ‘지·산·학 협력’의 의지와 역량이 정부 지원의 핵심 기준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역산업의 AI 전환 문제는 특히 그렇다. 정부 보고서는 판에 박힌 듯이 기존 산업의 AI 전환과 신산업 창출, 인재 양성을 강조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실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AI 연구(수도권) 따로, 공장(지방) 따로’로는 ‘공장의 AI 전환’은 ‘무늬만 AI’일 뿐이다. AI 연구(대학)와 실증(기업)을 지역에서 물 흐르듯 해야 한다. AI 공급자와 수요자 연결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AI 솔루션 공급자와 지역의 AI 도입 기업 간 매칭 같은 편의주의 발상으로는 지속성이 없다. 지역기업이 AI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용자 혁신’(user innovation) 니즈가 있어야 하고, 이들을 옆에서 도와줄 솔루션 공급자가 현지에서 생겨나야 한다. 이것이 자생적 혁신 생태계다.
정부가 산업 AI, 제조 AI, 피지컬 AI 등 어떤 이름을 갖다 붙여도 좋다. 다만 이것이 책상머리 AI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라는 점만은 분명히 인식하면 좋겠다. 일각에서는 이런 주장도 있다. 한국엔 공장이 있고 산업 데이터가 있지만 미국엔 공장도 산업데이터도 없으니 한·미 산업 AI 협력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업 차원에서 실제로 협력이 실현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한국보다 공업화가 늦기는 했지만 산업 AI에서 글로벌 최강을 노리는 중국이 바로 옆에 있다. 중국은 공장이 더 많고 산업 데이터도 무섭게 쌓고 있다. 한국이 차별적인 산업 AI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조업은 끝장이란 위기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제조업이 몰락하면 미국이 한국과 협력할 여지도 사라지고 만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이른바 ‘마스가(MASGA)’로 주목받는 조선산업을 사례로 생각해보자. 한국이 조선 설계와 생산, 운영에서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려면 수십 년간 쌓은 데이터와 암묵지에 기반한 조선 특화산업 AI를 빨리 확보해야 한다. 이는 제조업에 서비스를 더하는 ‘조선 지멘스’를 하나 만드는 것과 같다. 조선 AI라는 새로운 전략자산을 손에 넣더라도 동맹인 미국과 기술 수출로 협력할 부분과 기술 유출을 경계해야 할 부분의 엄격한 구분은 경제안보의 기본일 것이다.
조선 특화산업 AI 개발은 중국과의 차별적 경쟁을 위해서도 한시가 급한 국가 과제다. 당장 연구와 실증을 위한 산학협력, 현장 재직자의 AI 인재화가 본격화해도 부족할 판에 정부 지원책은 산발적이어서 전혀 체계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조선산업을 이끄는 기업이 스스로 산업 AI 개발에 나서려고 해도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기술 트렌드나 현실성과 거리가 있는 정부의 클라우드 보안 가이드라인부터 그렇다. 제조업 중에서도 구조가 복잡하기로 유명한 조선산업은 데이터의 디지털화, 표준화도 넘어야 할 큰 허들이다. 대기업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수준과 범위가 아니다. 기업이 안전과 생산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AI 기반 무인화·자동화 기술을 개발해도 실증과 적용이 쉽지 않다. 시대착오적인 법과 제도 때문이다.
조선산업뿐만이 아니다. 다른 제조업도 정도의 차이일 뿐 다 비슷한 처지다. 한국이 기름때 묻은 산업 AI를 해내지 못하면 아름다운 AI도 없다.
<본 칼럼은 2025년 11월 14일 한국경제 “[다산칼럼] 기름때 묻은 AI는 누가 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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