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의 종묘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서울시가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앞 세운상가 터에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는 조례를 통과시키자, 이후 문화체육부 및 국가유산청이 이는 문화유산법과 세계유산특별법에 위배된다며 이견을 냈다.
얼핏 보면 ‘도시 재개발’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 사례로 보인다. 필자는 이 논의에 도시 자체가 가지는 정체성의 의미도 얹어보려고 한다.
종묘는 1995년에 한국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교의 조상숭배 정신이 담긴 독창적인 건축 양식과, 500년 넘게 이어져 온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라는 무형유산이 함께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유네스코는 숲으로 둘러싸인 경관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했으며, 세계유산 구역의 시야를 해칠 수 있는 고층 건물 건립을 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이 권고는 단순히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라는 지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곳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오래도록 품어온 ‘기억의 장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그 앞에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는 문제는 단순히 “경관을 해친다” 정도가 아니라, 도시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울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비틀즈의 고향으로 알려진 리버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리버풀은 산업혁명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해양도시다. 리버풀은 18세기 노예 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에서 시작해, 19세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비록 20세기 들어서 대서양 무역 감소로 쇠퇴했지만, 버려진 항만 시설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개발하고, 비틀즈와 같은 팝 문화, 노예 무역의 역사(국제 노예 박물관) 등을 통해 새로운 문화 도시가 됐다. 사실 노예 무역의 핵심적인 항구도시였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영국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긴 하다. 그러나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해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라도 지우지 않고 껴안는 것’이 도시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런데 리버풀도 결국 개발의 압력 앞에서 이도 저도 아닌 도시가 되고 말았다. 항만 주변에 고층 건물과 호텔, 쇼핑몰 등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서게 됐고, 결국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21년 리버풀의 세계유산 지위를 박탈했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한 개발이, 그 도시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자산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이 결과는 도시의 풍경은 단지 눈으로 보는 장면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 울산은 어떨까? 필자가 볼 때 잘한 것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울산은 산업도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훨씬 오래된 역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수천 년 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고, 장생포 언덕에서 바라보는 바다에는 고래와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겹쳐진다.
그래서 울산시가 암각화를 중심으로 조성하는 ‘대곡천 역사문화 탐방길’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다. 즉 장소를 한 건물이나 경관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구간을 역사와 문화 속 이야기로 엮은 것이다. 이는 도시가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고, 사람들과 잇는 시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태화강의 경관을 해치는 태화루 옆 스카이워크 설치는 참으로 아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도시가 노후화되면서 재개발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도시의 역사, 문화와 생태를 아우르는 경관까지 밀어내는 개발은 결국 도시의 특정 공간에 얽힌 기억도 비워버리고 만다. 서울이 종묘 앞에 내리는 결정은 단지 건물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들이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본 칼럼은 2025년 11월 26일 경상일보 “[최진숙의 문화모퉁이(27)]기억으로 만들어지는 도시”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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