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입니다. 7년 만에 뵙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 덕분에 여러분 앞에 다시 이렇게 섰습니다. 30년 전 우리는 벤처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던 길을 열었습니다…한국의 미래 30년 그 주인공은 다시 한번 도전하는 사람들 바로 여러분입니다…‘다시 벤처’, 그것이 우리가 미래세대에게 남길 가장 값진 약속입니다.”
대한민국 벤처 30주년 기념식장에 ‘AI 이민화’가 등장해 다시 한번 큰 울림을 줬다. 고(故)이민화 회장은 벤처 1세대를 이끈 한국 벤처의 대부다. 메디슨의 창업자로, 벤처기업협회 창설자로 벤처 생태계의 씨를 뿌린 인물이다.
한국 벤처 30년의 성과는 기록이 말해준다. 2023년 벤처기업수 기준 총 매출액은 242조원(모집단 3만6959개)으로 추정된다. 재계 기준으로는 삼성(295조원), 현대차(275조원)에 이어 3위 수준이다. 벤처 종사자 수로 따지면 약 93만5000명이다. 4대 그룹(삼성, 현대차, SK, LG)의 74만6000명을 크게 상회한다. 한국의 경제개발을 이끌어온 대기업 기업가정신에 이어 벤처 기업가정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벤처창업의 지역적 분포도다. 1990년 이전, 1991~2000년, 2001~2010년, 2011년 이후의 창업 지도를 비교하면 중요한 시사점이 포착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창업이 대전권 등으로 확산되는 등 의미 있는 변화도 있지만,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적인 틀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나마 고무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수도권과 대전권 밖에서 동남권과 대경권이 벤처 창업의 또 다른 축으로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다시 벤처’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국가 전략이다. ‘다시 벤처’ 30년으로 한국 경제를 확 바꾸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혁신을 수도권의 종속변수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변수로 간주해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보자는 것이다. 수도권 분산과 그 낙수효과를 통해 지역혁신을 도모하는 수동적 접근이 아니라, 자생적인 지역혁신의 파이를 키워 수도권의 비중을 깨는 능동적 접근으로 바꾸자는 얘기다.
자생적 지역혁신의 가능성 관점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해 볼만한 강력한 후보지의 하나는 한반도 남쪽의 남동 축이다. 울산과 포항, 경주라는 이른바 ‘해오름 동맹’과 부산과 울산, 경남이라는 ‘부·울·경 메가시티’가 그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는 무엇보다 스타트업 창업의 수요 역할을 해줄 대기업의 존재다. 경주의 한수원, 포항의 포스코, 울산의 HD현대와 현대차·SK, 경남의 한화와 LG·KAI, 부산으로 온다는 해운회사 등이 그렇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불가분의 두 축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글로벌 연구중심 대학의 존재다. UNIST와 포스텍이 있다. 포스텍은 스타트업 혁신도시 포항에서 세계로 가자는 ‘퍼시픽 밸리(Pacific Valley)’를 추구하고 있다. 포항형 벤처생태계 전략은 자생적 창업 생태계의 가능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UNIST는 딥테크 창업중심대학의 모델이다. 최근 팁스(TIPs·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운영사로 선정된 UNIST 기술지주는 서울사무소를 개설했다. 창업의 지리적 제약을 혁파하겠다는 각오다. UNIST와 HD현대의 ‘조선 특화 AI’ 개발을 위한 MOU는 스타트업 창업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대륙으로, 해양으로 나아가는 ‘투윙스 밸리(Two Wings Valley)’는 UNIST의 창업 비전이다. UNIST와 포스텍, 두 연구중심 대학이 손을 잡으면 KAIST를 넘어 수도권의 강력한 대항마로 부상할 것이다.
울산(조선·자동차·석유화학·비철금속), 경주(원전), 포항(철강), 경남(국방·기계·우주·항공), 부산(해양·물류·금융)이 뭉치면 산업의 펜타곤(Pentagon)이 된다. 한반도 남동축이 ‘벤처 창업 펜타곤’으로 변모해 수도권의 대안으로 자리잡고 호남권과 연결되면 남쪽에 혁신경제권이 탄생할 수 있다. 한국 경제를 확 바꿀 명실상부한 ‘벤처의 전국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본 칼럼은 2025년 12월 9일 경상일보 “[안현실칼럼]한국을 바꿀 ‘펜타곤 창업밸리’를 꿈꾼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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