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과 학위 없이도 학생을 수업에서 열심히 공부하게 할 수 있는 교수가 지금의 대학에 있을까? 25년 정도 대학에 몸 담고 있고 또 학생으로서 대학을 다닌 경험으로, 무수히 봐왔지만 그런 교수를 아직 목격하지 못했다. 한 두 시간은 가능할지 몰라도 학기 전체 동안 학생들이 그저 재미 있어서, 학문적 호기심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니 학점과 학위 없는 대학은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학점과 학위를 다른 단어로 번역하면 교육 체계의 힘 관계 또는 권력이 된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가 있고 질서에는 일정 권력이 요구되니 대학은 권력으로 유지되는 질서의 세계로 나가는 지식을 취득하는 곳 쯤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 기관으로서의 대학은 현대 사회의 필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이 온 세상의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지금, AI 인재 배출의 소명을 대학이 짊어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989년 www 세상이 열리고 등장한 2008년 빅 데이터 개념, 2016년 인공 지능, 그리고 2022년 생성형 인공 지능 과학기술은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급변하는 디지털 과학 기술 속에서 대학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위치에서 기업의 첨단 기술을 활용하고 이를 사회 표준이란 질서 내에서 있으면서 응용하는데 적합한 인재 양성 기관이란 위치로 스스로를 추락시키고 있다. 대학의 큰 ‘대(大)’가 무색해졌다. 여전히 첨단 과학 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일면 분명하지만 선봉에 서서 과학을 이끄는 과거의 영광은 내려놓은 지 오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상에 뒤쳐져 버린 자신의 모습을 성찰할 마음 따위는 애초에 없고 대신 대학 순위에서 만큼은 질 수 없다는 기세다. 세계 대학 100위권, 아시아 대학 10위권, 국내 대학 순위 상위권 달성을 홍보하는가 하면 등수가 떨어진 대학은 대학 존폐의 위기 차원에서 절대절명의 표정으로 순위 올리는 전략을 세운다.
문제는 대학이 도토리 키재기에 열을 올리는 것에만 있지 않고 높아진 대학 순위 결과로 국가로부터의 지원을 보장받고 사회적 명성을 얻는 것이다.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은 그 명성을 보고 자신의 목표 대학을 정한다. ‘서울대학 10개 만들기’의 핵심은 “서울대학”이란 어떤 대학인지 이해하는 대신, 사회가 만든 표준 명성을 갖는 일등 대학을 10개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는 논리에 맞지 않다. 1등 대학이 열 개이면 공동 1등 대학이 10개인가? 2등으로 만족하기 힘드니 공동 1등을 여러 개 만들겠다는 기발하지만 슬픈 현실이다.
대학의 수업, 연구 활동, 세미나 등에서 생기는 모든 말과 글을 아주 “큰 귀와 눈”이 보고 듣는다는 가설을 세워보자. “큰 귀와 눈”은 인공 지능 또는 블록 체인 기술이어도 좋고 성큼 다가온 양자 컴퓨터 기술일 수도 있다. “큰 귀와 눈”은 학점과 학위를 단번에 대신할 수 있다. 교육과 학문 활동의 모든 말과 글을 듣고 본다는 것은 기존의 표준 지식과 규범의 전달에는 그다지 관심없다. 교육과 학문이 다루는 문제가 여러 가지로 해결되는 형성 과정에서의 상황과 조건을 보고 듣고 기록한다. 교육 감시가 아니라 애정어린 관심을 가지고 문제 해결 과정의 상황과 조건을 기록하다못해 기억한다.
대학 너머 이제 사회로 나와보자. 과학 기술, 경제, 문화, 예술 등의 분야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가 필요할 때 참가할 사람(인재)을 어떻게 찾을 수 있나? 지금이라면 기업과 국가 기관 등에서 학위와 학점을 보고 면접 등을 통해 인재를 선발 하겠지만, “큰 귀와 눈”은 수행할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문제의 해결책에 가까운 상황과 조건을 먼저 찾고 그 상황과 조건을 예전에 제시했었던 사람을 프로젝트로 초대할 수 있다. 즉, “큰 귀와 눈”은 학위와 학점을 대체해 버린 거다. 큰 귀와 눈을 가진 이상한 나라의 대학 개념인 거다. 디지털과 양자 컴퓨터 과학 기술이 교육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는 대학의 진화로 통하는 문을 만들어 줬으니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를 갖고 그 문을 여는 것이다.
<본 칼럼은 2026년 2월 11일 울산매일 “[매일시론] 이상한 나라의 대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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