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새 학년을 맞이하는 3월의 교실은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희망과 ‘틀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쉬는 시간 중 축구를 하다가 다치는 아이가 생겼다는 이유로 축구를 금지한 초등학교가 있다. 운동회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지 않도록 무승부로 끝을 내자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또한 초등학교에서 공개적으로 상장을 주지 않고 수상자에게 조용히 따로 전달한다는 소식도 있다. 언뜻 보면 다치거나 패배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왜 살면서 상처를 입으면 안 되는지 의문이 든다. 학기 중 시험을 본 후 몇 등인지도 알고, 속상하거나 뿌듯해 보기도 하고, 심기일전해 보기도 하고, 선생님께 혼도 나고, 칭찬도 받고, 전교생 앞에서 상장도 받아보고, 상을 받은 친구들 축하도 해주고, 점심 때 축구와 피구를 하다가 다쳐도 깔깔대며 다시 뛰어다닐 수 있는 학교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저절로 어른이 되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문턱을 넘어야 한다. 바로 고통, 위험, 실패, 공동체의 냉혹한 시선을 견뎌내는 과정이 그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통과의례(rite of passage)’라 불러왔다. 통과의례는 잔인해 보이지만, 한 사회가 한 인간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책임지겠다는 신호이다. 고통을 통과한 사람만이 권리뿐 아니라 책임을 함께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통과의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은 어려운 일을 겪으며 성장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다치지 않도록 보호받는다. 상처받지 않도록, 실패하지 않도록, 좌절을 겪지 않도록 관리된다.
물론 이 변화의 배경에는 과거 교육 현장의 차별, 체벌과 억압의 기억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단단해지는 경험’까지 함께 제거되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자녀 교육 담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아동 인권’이다. 아이는 존중받아야 하고, 보호받아야 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모두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동시에 아이는 세계의 냉혹함을 배울 수 있는 길도 열려있어야 하지 않는가? 권리는 선언으로 주어지지만, 책임은 경험으로 학습된다. 넘어져 본 아이만이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알고, 실패를 겪어본 사람만이 좌절을 관리하는 기술을 갖는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녀가 넘어지기 전에 미리 손을 내밀고 길에 놓인 돌멩이를 치워 줌으로써 위험한 환경 자체를 경험할 기회를 제거한다. 아이는 보호될지 모르지만, 결코 돌멩이가 있는 길을 비켜 가는 법을 익히지 못하며, 설사 넘어졌다 해도 일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19세기 프랑스의 어느 초콜릿 작업장에서 한 견습생이 실수로 끓는 생크림을 초콜릿이 담긴 그릇에 쏟아버렸다. 이를 본 스승이 버럭 화를 내며 ”이 가나슈(Ganache, 바보 같은 녀석)야!“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버리려던 그 ‘실패작’ 초콜릿을 섞어보니, 전례 없이 부드럽고 매혹적인 크림이 탄생했다. 그 ‘바보 같은 실수’가 없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오늘날의 ‘가나슈’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또 다른 사례는 페니실린이 있다. 실험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생겨난 곰팡이가 전 인류를 구해낸 항생제가 될 줄을 그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실수와 실패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계속 시도하다 보니 우연한 성공의 길로 갈 수도 있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교육과 제도가 아이들을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서 성숙시키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 어른들의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수많은 실수와 실패의 경험들이 아이들을 성장하게 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다가올 혼란과 고통을 극복할 능력을 길러 줄 것이다.
<본 칼럼은 2026년 3월 11일 경상일보 “[최진숙의 문화모퉁이(30)]실수로 만들어진 가나슈”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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