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기업의 운영 방식을 바꾸고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공장이나 사무실 뿐 아니라, 기업가가 세상을 바라보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에도 있다. 그동안 기업가는 불확실성 속에서 대담한 선택을 감행하는 인물로 묘사되어 왔다. 하나의 아이디어에 모든 것을 걸고,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극적인 서사를 살아가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장기적으로 살아남은 기업가들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반복적인 실험과 학습이 있다. 시장 반응을 관찰하고, 제품과 사업모델 설계의 가설을 수정하며, 실패를 통해 방향을 조정한다.
과거의 실험은 느리고 비쌌다. 시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몇 달이 걸렸고, 고객 반응을 확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실험의 실패는 곧 재무적 손실로 이어졌고, 이는 기업가로 하여금 실험을 최소화하고 한 번의 선택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만들곤 한다. 많은 경우, 실패를 통해 배우기보다는 실패를 피하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AI는 이 조건을 바꾸고 있다. 오늘날 기업가는 AI를 활용해 수많은 대안을 동시에 생성하고 비교할 수 있다. 제품 디자인, 기능 구성, 가격 전략, 마케팅 메시지, 심지어 비즈니스 모델의 구조까지 빠르게 실험할 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 행동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작은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예측이 가능하게 되었다. 실험의 속도와 규모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 것이다.
이 변화는 기업가의 탐색(exploration) 방식을 바꾼다. 이제 하나의 아이디어에 모든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여러 가능성을 병렬적으로 시험하고, 시장에 실제로 진입하기 전 단계에서 상당 부분을 검증할 수 있다. 실패의 비용이 낮아지면서, 역설적으로 더 과감한 탐색이 가능해진다. 이는 혁신이 대기업이나 자본을 가진 소수에게만 허용되던 구조를 완화하고, 더 많은 실험을 시장에 허용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AI는 활용(exploitation) 능력을 크게 강화한다. 무엇이 잘 작동하는지를 빠르게 포착하고, 성과가 확인된 요소를 정교하게 개선할 수 있다. 과거에는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는 것과 기존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면, 이제는 두 과정이 빠른 피드백 속에서 순환하는 구조로 결합된다. 실험과 개선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경영 루틴이 되는 것이다.
AI 시대의 기업가는 더 이상 직감과 결단만으로 움직이는 모험가가 아니다. 점점 과학자에 가까운 존재로 변하고 있다. 과학자는 모든 실험이 성공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하더라도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 유무가 아니라, 실패가 정보를 남기는 방식이다. AI는 기업가가 이러한 과학적 실험 논리를 실제 경영에 적용하도록 돕는다. 실패한 제품이나 전략은 좌절이 아니라 데이터가 된다. 학습의 속도와 질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물론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과학적 실험에는 명확한 가설이 필요하다. 아무 질문 없이 데이터를 돌리는 것은 실험이 아니라 무작위 탐색에 가깝다.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 무엇을 검증하려는지 정의하는 일은 여전히 기업가의 몫이다. AI는 답을 계산할 수 있지만, 어떤 질문이 중요한지를 정해주지는 않는다. 또 하나의 위험은 과신이다. AI가 제시하는 결과는 종종 매우 정교하고 확신에 차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는 특정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전제한 가정 위에 서 있다. 단기 지표에 최적화된 판단이 장기적인 기술 변화나 사회적 맥락을 놓칠 가능성도 크다. AI가 강력해질수록, 인간의 해석 능력과 비판적 사고는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AI는 기업가의 역할을 재정의한다. 직감과 결단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위에 체계적인 실험과 검증이 덧붙는다. 더 많은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고, 더 많은 기회가 탐색된다. 실패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그리고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이 일어난다. AI 시대의 기업가는 직감과 결단으로 움직이는 모험가를 넘어서 점점 더 과학자에 가까운 존재로 변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경영 환경에서, 이러한 과학적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지속적인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본 칼럼은 2026년 3월 12일 경상일보 “[경상시론]과학자로서의 기업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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