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울산시에 비상이 걸렸다는 뉴스를 들었다. 대형 사업이 잇따라 완료됨에 따라서 내년 국비 2조 확보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울산의 강점을 바탕으로 최근 국비지원이 증가하는 분야인 재난·안전 연구개발사업 추진에 울산의 역량을 한 곳에 모을 필요가 있다.
지난 1월6일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중구 혁신도시에서 신청사 개청식을 가졌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국가 재난·안전 기술정책 개발의 싱크탱크이다. 뿐만 아니라 울산 혁신도시로 이전한 안전보건공단 내에는 전문 연구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도 있다. UNIST 도시환경공학부에는 재난관리공학이 개설돼 왕성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특히 울산시는 시민안전실을 새롭게 만들어 국제연합 재해경감 전략기구(UNISDR)의 방재안전도시 인증을 추진하는 등 안전도시 울산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재난·안전 연구개발에 국가적 차원에서 집중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연구개발본부를 운영하며, 재난을 포함한 국토 안보관련 다양한 연구개발의 총괄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은 방재도시 개발, 재난안전체험관, 재난관리 시뮬레이션, IT기술을 활용한 첨단 방재장비 등을 주요 방재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재난·안전 관련된 시장 규모는 2004년 85억달러, 2010년 130억달러로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일본의 방재관련 사업 및 예산은 과학기술연구, 재해예방, 국토보전, 재해복구 등 4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으며, 재해예산의 약 76%를 재해예방에 투자하고 있다. 일본의 재난·안전 관련 산업은 건물진단 및 장수화 시스템, 지진 감지제품, 비상 식음료 및 비상용품, 안전 체험관, 국가 지원 기술 개발사업으로 구분돼 있다.
우리나라도 세월호 사고 이후 각 부처에 분산된 안전관련 조직을 통합, 지휘체계의 일원화를 위해 재난대응 컨트롤타워 부처로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기도 했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한 삶 보장을 위해 재난대응시스템 구축, 재난·안전 R&D 기능 강화 및 원스톱 재난안전 통신망 구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R&D 규모의 지속적인 확대에도 불구하고, 재난·안전 R&D분야에 대한 특화된 정책이나 투자는 미흡하다. 2015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중 14개 부처의 재난·재해·안전 R&D예산은 2014년도 5880억원에서 전년대비 13.7%가 증액된 6685억원 편성되었지만 여전히 국가 R&D예산(18조8245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불과하다.
2012년 현재 우리나라의 재난·안전 분야 기술수준은 선진국 대비 6.3년의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와 주요국 간 기술격차는 최고기술을 보유한 미국에 6.3년, 일본과 EU에 대해서는 각각 4.2년과 3.6년 뒤져 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재난·안전 연구개발사업의 최적지는 바로 울산이다. 울산의 화학물질 취급량은 2013년 기준으로 5741만t(전국 대비 35%)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울산의 남쪽과 북쪽에는 원자력발전소가 13기가 가동 중에 있고, 4기가 추가 건설될 예정이다. 울산신항, 울산본항, 온산항, 미포항 등 대형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항만도 대규모로 입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설된지 52년이나 지난 울산산업단지의 노후도는 심각한 상황이다.
울산시,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안전보건공단과 UNIST가 함께 지혜를 모아서 울산을 안전한 도시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할 때이다. 해외에서는 단순한 재난 예방을 넘어서 산업으로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울산은 잘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정부사업으로 추진하기에도 가장 적합한 분야이다.
지난 해 타계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1986년 <위험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실제로는 가공할만한 ‘위험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울리히 벡이 지적한 ‘위험사회’의 전형은 바로 울산이다. 울산은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도시이면서 재난과 위험이 상존하는 도시인 것이다.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한 울산의 공헌에 걸맞는 안전도시로 도약하는데 국가의 지원을 당당히 요구할 명분도 충분하고, 시기도 적기이다.
조재필 UNIST 연구처장
<본 칼럼은 2016년 4월 6일 경상일보 18면에 ‘[오피니언]재난·안전 연구개발 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할 때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