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 루이 다게르가 세상에 내놓은 은판사진술은 단순한 기술 발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년간 서양 회화가 쌓아온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 즉 ‘실사(實寫)’를 향해 정교하게 발전해온 회화의 세계에 사진이라는 기계가 갑자기 뛰어든 것이다. 당대 최고 미술아카데미인 파리 에콜 데 보자르는 변화를 거부하며 여전히 고전적 구도와 정밀한 묘사를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그 견고한 성벽 바깥에서, 몇몇 이단아들이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갔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그들은 빛이 사물에 닿는 순간의 떨림을, 같은 건초더미라도 아침과 저녁이 얼마나 다른지를,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마음이 느끼는 것을 화폭에 담으려 했다.
1874년, 이들의 첫 전시에 쏟아진 것은 조롱이었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모네의 작품 제목 ‘인상, 해돋이’를 빌려 ‘인상주의자들’이라 비웃었다. 그러나 그 조롱받던 이름은 미술사의 가장 빛나는 장으로 남았다. 사진이 실사의 영역을 장악하자, 회화는 오히려 해방되었다. 인간의 감정, 빛의 감각, 시간의 흐름이라는 사진이 담을 수 없는 세계로 깊숙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사진의 충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인상파 이후 회화는 점점 더 멀리 나아갔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은 마침내 사물의 형태마저 버렸다. 색과 선과 면 자체가 의미가 되는 추상미술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사진이라는 기술 충격은 단순히 화풍을 바꾼 것이 아니라,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시각 예술 전체를 다음 단계로 밀어붙였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기술 충격 앞에 서 있다. AI는 이미 정해진 문제를 푸는 영역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빠르게 추월하고 있다. 법률 문서 검토, 의학 영상 판독, 코드 생성, 논문 및 문서 작성.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도의 훈련이 필요했던 지적 노동들이 AI 앞에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 앞에서 교육계는 부랴부랴 AI 리터러시를 교육과정에 끼워 넣고,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방법론적 대응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진의 충격이 인상파로 끝나지 않았듯, AI의 충격도 교육 방법의 혁신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충격은 결국 가장 불편한 질문을 고민하게 한다.
“교육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취업을 위한 것이라면 AI가 대체하는 직업이 늘어날수록 교육의 입지는 좁아진다. 사회화를 위한 것이라면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의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라면 알고리즘이 여론을 설계하는 세계에서 시민을 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에 앞서, 교육을 통해 한 사람이 온전한 인간으로 형성되는 것인가.
이 질문들은 교육철학이 오랫동안 붙들어온 물음이다. 그러나 교육 현장은 이 질문을 계속 미뤄왔다. 입시와 취업과 성과 지표라는 일상의 무게가, 근본을 묻는 목소리를 눌러왔다. AI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교육이 스스로와 마주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유니스트는 이 질문 앞에서 답을 구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다. 이번 달 출범하는 ‘GRIT 인재 융합학부’는 전공의 경계를 허물고 학생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며 프로젝트로 배우는 교육과정이다. 정해진 정답을 빠르게 찾는 훈련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발견하는 힘을 기르는 시도다. 이것은 살롱의 문법을 거부하고 야외로 나갔던 인상파의 실험과도 같다. 그리고 그 너머, 우리는 묻는다. 이 인재를 길러내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어떤 인간을,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사진의 등장이 회화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추상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켰다. AI의 등장 역시 인간의 지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오랫동안 미뤄온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강요하고 있다. 그 불편한 질문을 먼저 붙드는 대학이, 다음 시대를 열어갈 인재를 길러낼 것이다.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갈 시간이다. 그 다음에는, 캔버스 위에 무엇을 그릴 것인지를 물을 시간이다.
<본 칼럼은 2026년 4월 1일 경상일보 “[배성철 칼럼]사진과 인상파, 그리고 AI 시대의 교육”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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