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다수 기업은 창업자와 창업자 가족이 지배주주인 가족기업이다. 가족기업은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미국에도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기업 형태다. 가족기업에 제기되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가족기업은 혁신적인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혁신의 DNA를 찾고 있는 한국 경제에도 매우 중요한 질문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제조기업 중 가족이 지배주주인 298개 기업을 1998년부터 10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가족 소유권이 높을수록 혁신에 대한 기업자원의 투입인 연구개발 투자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기업 소유주에게는 기업을 경제적으로 운영하여 소유 주식 가치를 높이는 경제적 동기도 중요하지만 가족에게 기업을 물려주고 기업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비경제적 동기가 더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비경제적 동기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가족이 원하는 대로 기업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기업이 기업 통제목표 때문에 연구개발을 선호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마냥 비경제적인 동기만 추구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경제적인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면 기업이 파산위기에 빠지고, 기업이 존재하지 않으면 가족의 기업 통제목표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경제적인 동기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이 예상될 때 가족 소유주는 기업 통제목표를 보호하기 위해 경제적인 목표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장 기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으면 경쟁기업과 규모 격차가 벌어져 전략적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고, 가족의 기업 통제목표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가족기업은 동종산업 매출액이 증가하는 성장 기회 상황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성장 잠재력을 확보하고 가족의 기업통제 목표를 보다 안전하게 지키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족기업의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은 계열기업이 없거나 소수인 독립 가족기업에서만 나타나고, 재벌과 같이 많은 계열기업으로 구성된 대규모 가족 기업집단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규모 가족 기업집단에서는 계열사가 연구개발 투자 부족으로 성장 기회를 실기하더라도 계열사 간 지원을 통해 경제적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업의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에도 피라미드 소유구조와 순환출자를 통해 소유권을 확고하게 다져 놓아 가족의 기업통제 목표가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보호되는 것이다.
그 결과 대규모 가족 기업집단에서는 가족 소유권이 증가하고 성장 기회가 높아져도 연구개발 투자는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는 지배구조 문제로 인해 연구개발 투자가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한국 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족기업이 효과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가족기업을 성장 기회가 풍부한 영역으로 유인하는 노력뿐만 아니라 기업 성과가 저조할 때 가족의 기업 통제가 영향을 받도록 가족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최영록 UN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6년 4월 22일 매일경제신문 c-05면에 ‘[Biz Solution]가족기업 특유의 장기투자, 문어발식 재벌 되면 사라져’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