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이 말은 미국의 환경론자 배리 코모너가 생태학의 네 가지 법칙을 언급하며 그 법칙 중의 하나로 들고 있는 말이다. 코모너는 생태계에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지적한다. 가령 쓰레기를 소각하면 쓰레기가 모두 없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이옥신 같은 유해 가스가 대기 중에 남아 있고, 타고 남은 재와 찌꺼기는 토양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코모너가 말하는 이 법칙은 비단 생태계에만 적용되지 않고 더 나아가 문화 환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화에서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 얻는 것이 별로 없다. 얼마 전 미국의 저명한 시사교양지 ‘뉴요커’가 한국 문학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다룬 칼럼을 실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미국의 문학 평론가 마이틸리 라오는 온라인판 이 잡지에 “한국 작가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이 글을 쓴 라오는 ‘뉴욕타임스’·‘퍼블리셔스 위클리’ 등에 문학 칼럼을 기고하는 한편 뉴욕 공영 라디오 방송에서 ‘테이크 어웨이’라는 대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평론가다.
라오는 한국은 문맹률이 겨우 2퍼센트밖에 안 되는 아주 ‘유식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한 해에 무려 4만여 권의 책을 출간하는 문화 국가라고 먼저 운을 뗀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는 겨우 한 명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라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KL 매니지먼트’의 조셉 리의 말을 인용한다. 조셉 리는 “한국인들은 문학에 관심이 적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노벨상에 관심을 두기 전에 한국 문학에 더 관심을 보여야 한다. 많은 사람이 책은 읽지 않으면서 노벨상을 원한다”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국민들은 책을 읽지 않는데도 국가에서는 정책적으로 노벨상을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국민은 노벨상이라는 국제무대에서 공짜 점심을 원하는 셈이다.
조셉 리의 말대로 한국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기로 유명하다. 지하철을 한 번 타보라. 앞자리에 앉아 있는 일곱 명 승객 중 여섯 명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채팅을 하거나 게임에 몰두해 있다. 나머지 한 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을 자고 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신문을 읽거나 잡지를 읽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적어도 무가지(無價紙)라도 열심히 읽고, 비좁은 공간을 비집고 다니며 읽고 난 신문을 수거해 가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풍경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한국에서 독서 인구는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우리나라 성인 열 명 가운데 서너 명은 일 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실시하는 독서실태 조사에서 올해 독서률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성인 남녀 5천 명을 대상으로 독서 실태를 조사했다. 잡지나 만화, 교과서나 수험서는 제외하고 종이책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랬더니 연평균 독서률은 65퍼센트였다. 한 해 전보다 무려 6퍼센트 포인트가 줄어든 것이다. 이것은 1994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일 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100명 가운데 35명에 이른다는 뜻이다. 독서율은 1994년에 87퍼센트였는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22퍼센트 포인트나 뚝 떨어졌다. 그렇다면 성인들은 전과 비교해 왜 책을 읽지 못할까? “일이나 공부 탓에 시간이 없다”는 대답이 35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았다”는 이유가 24퍼센트,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응답도 14퍼센트에 이르렀다. 그러나 책을 읽는 성인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독서량은 지난해 14권으로, 2013년 13권보다 한 권 늘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여전히 읽지만 읽지 않는 사람은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독서에도 양극화 현상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책을 읽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간 부족이나 독서 습관 때문이 아니라 최근 들어 필수품이 되다시피 한 휴대전화나 컴퓨터, 태블릿 PC의 인터넷 사용 때문이다. 정보를 검색하는 데는 인터넷만큼 좋은 디지털 기기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고 지나치게 인터넷에만 의존하다 보면 깊이 있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점점 쇠퇴하게 된다. 최근 몇몇 과학자들은 디지털 기기를 너무 사용하면 인간 두뇌의 배측면 전두엽 피질의 회질 양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관심을 끌었다. 한편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언어나 기억력을 관장하는 측두엽이 발달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책을 읽지 않고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노벨상을 그만두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디지털 치매에 걸릴지도 모른다.
김욱동 문학평론가·UNIST 초빙교수
<본 칼럼은 2016년 5월 10일자 울산매일신문 17면에 ‘[오피니언]책 읽지 않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