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울산과학기술원(UNIST) 창의디자인 학부졸업프로젝트 하나가 매우 명망이 높은 국제학회에 쇼케이스로 발탁, 캘리포니아 산호세를 다녀오는 길에 글을 쓴다.
지난해에도 미국출장을 다녀오며 본지 시론을 쓴 적이 있는데, 렌터카를 운전하며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십수개월만에 부쩍 증가한 전기자동차였다. 테슬라는 물론 닛산리프, BMW i3, 쉐보레 볼트와 스파크EV 까지 다양한 전기차가 일반차와 뒤섞여 돌아다니고, 거의 모든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장치가 들어서 있었다. 수많은 실험차량과 다양한 전기차가 실제 도로에 다니고 있는 일본과 유럽까지 고려하면 바야흐로 전기차의 시대가 확실히 왔다.
불현듯 필자가 왜 유달리 전기차를 구분해서 인식하려고 하는 가를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 일반 판매되는 전기차는 BMW i3 단 하나뿐이고, 아직까지 도로에서 전기차와 마주치는 것 또한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 국산 저속전기차가 연일 매체에 소개되고, 전용도로가 생겨나고 법제까지 다듬는 전기차 광풍을 경험하며 우리나라가 전기차 시대를 주도하는 듯한 긍정적인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테슬라의 국내진출을 두고 정부보조금지원을 받을 수 있네 마네 떠들거나, 전기를 생산할 때 화석연료를 사용하면 어차피 공해는 발생하고 에너지 효율은 더 낮다는 논리로 전기차의 친환경성과 전기차 시대의 도래를 폄하하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다. 외국기업 전기차 공세를 겨우 보조금정책으로 막아보겠다는 발상은 차칫 무역분쟁의 씨앗이 돼 더 큰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고, 내연기관보다 전기모터의 에너지효율이 더 높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거니와 이미 세계적 대세가 된 전기차로의 가파른 변화는 더 이상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저하는 사이 우리나라는 또다시 세계 전기차를 주도할 수 있는 백년기회를 잃고 있다.
하이퍼루프라 불리는 초음속 캡슐열차로 연일 세상이 떠들썩하다. 요약하면 진공에 가까운 튜브의 양 끝을 자기부상상태의 객실캡슐이 시속 1000㎞ 이상의 속도로 오가는 방식으로, 서울~부산을 16분에 주파한다. 사실 수십 년 전 제시된 기술이었지만 구체화의 어려움과 경제성을 감안할 때 실현 가능성이 낮아 계속 검토 중이었던 것을 테슬라 엘런머스크 주도의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와 실험에 성공하고 개발가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엊그제 실험 성공을 통해 유명세를 타는 하이퍼루프는 늘 후발주자, 패스트팔로우어 위치가 최선인 우리에게 창조자, 주도자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또다시 실현가능성과 경제성 논박으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오늘날 전기차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처럼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고 후발주자로 전락할 것이다.
자동차, 조선과 토목, 건설이 주력업종인 우리가 하이퍼루프를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물론 캡슐열차의 디자인과 플랫폼, 시스템디자인부터 기존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하지만 연구역량과 인프라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단 바로 지금부터 강력한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LA에 소재한 피킹턴자동차역사박물관에 가보면 답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1900년대에 등장했던 전기차, 1930년대에 개발된 하이브리드차, 1990년대에는 GM의 EV1이라는 양산판매된 전기차 실물이 전시돼 있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연기관 자동차가 대세였고, 기술 인프라가 열악했던 시기였음에도 선험적 연구와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오늘날 전기차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위주의 반짝 보도와 관심으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미래모빌리티로서 도심지용 개인차량도, 장거리대량고속운송수단인 하이퍼루프도, 현실화시키려는 노력은 바로 지금 필요하다. 2025년, 코레일로고만 덧입힌 프랑스국영철도기업 ‘알스톰 하이퍼루프’로 서울~부산을 16분에 주파하고 테슬라제 개인운송수단으로 도심지를 돌아다니는 것은 재미없다. 필자가 디자인하고 UNIST가 선도한 하이퍼루프로 서울역에 내린 다음 ‘현대 얼반모빌리티’로 미팅장소로 이동하는 편이 훨씬 재미있다.
정연우 UNIST 교수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본 칼럼은 2016년 5월 16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모빌리티와 하이퍼루프, 미래에 대한 새로운 기회’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