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은 과학의 날 행사에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는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전이자 유일한 성장엔진”이라고 밝혔다. 이어 5월 국가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는 “연구자들이 자율성을 갖고 연구에 몰입해 연구할 맛이 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추격형 연구개발(R&D)이 아니라 선도형 R&D로 혁신할 것을 주문했다.
이는 최근 청년실업, 제조업 위기, 경제위기, 넛크래커(nut-cracker) 등 우리 경제와 산업 전반에 팽배한 위기론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과학기술을 통한 원천기술 확보에 있다는 범국민적 공감대에 기반한 것이다.
내년이면 광역시 승격 20주년을 맞는 한국의 공장 그리고 산업수도로 불리는 울산도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업의 위기로 지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 9월 과학기술원으로 전환된 UNIST는 울산에 3,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성장동력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연구와 교육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1973년 이후 우수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고, 국내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 기반을 구축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전문연구요원 제도의 폐지 소식은 과학기술인들에게 큰 당혹감을 안겨줬다.
물론 호전적인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인구절벽` 현상으로 인한 병력 자원 감소는 국방부의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냉철히 생각해보면 현대의 전쟁은 이미 병력 수 경쟁이라기보다는 비대칭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최첨단 과학기술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경제적 능력이 필요한 질적 전쟁으로 바뀌었다.
스텔스, 드론 등의 첨단 기술과 알파고에 의해 촉진된 인공지능(AI) 연구와 융합됨으로써 최첨단 무기 개발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과연 누가 이러한 기술들을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바로 능력 있고, 패기 있는 신진 전문연구요원들이다.
이미 4개 과기원 400여 명의 전문연구요원이 국방과학기술의 고도화 및 신무기 체계 개발을 위해 밤낮으로 사명감을 갖고 국방과제를 연구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연구 활동이 아니라 익숙지 않은 군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국방력 강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차세대 FX 전투기 도입에서 볼 수 있듯이 국방과 관련된 첨단 과학기술은 아무리 피를 나눈 동맹국이라도 서로 나누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최근 미국과의 협상 과정을 통해서도 목도했다. 최근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은 파격적인 유인책으로 외국 과학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박사급 고급 두뇌 유출률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작금의 상황들을 고려해보면 박사급 고급 인재 영입이 선진국 간 치열한 경쟁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전문연구요원을 폐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려야 하는 게 시대 상황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방 안전에 기여하는 국가의 정책적 방향이 아니겠는가.
정무영 UNIST 총장
<본 칼럼은 2016년 5월 20일 매일경제신문 39면에 ‘[테마진단]병역특례 폐지 ‘국방력 강화’아니다 ’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