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디자인 석학인 헨리 크리스티안스 박사가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의 신임 학부장으로 부임했다. 크리스티안스 학부장은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 산업디자인공학대학과 포르투갈의 디자인공학 스쿨에서 교수로 재직했던 인물이다. 20일이면 UNIST에서 학부장을 맡은 지 50일이 된다.
크리스티안 학부장은 취임 일성으로 ‘모든 것을 선도하는 창의적 디자인’을 강조했다. 디자인이 겉모습만 다루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절차를 아우르는 혁신의 요소라는 것이다. 그는 디자인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디자인 스쿨’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특히 UNIST의 슬로건인 ‘First in Change’에 주목했다. 디자인이 변화를 선도하는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철학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30년간의 경험을 살려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를 ‘최고의 디자인 스쿨’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안스 학부장은 새로운 디자인 스쿨을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한다. 먼저 ‘비전’이다. 그는 한국이 21세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디자인으로 혁신과 성장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다음은 ‘교육’이다.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의 프로그램은 창의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 학생들을 세계적인 혁신가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마지막은 ‘응용연구와 디자인’이다. 교수, 학생, 기업체가 공동으로 창조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예정이다.
크리스티안스 학부장은 “비전과 교육, 응용연구와 디자인이라는 세 키워드에 집중해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가 급변하는 세계에 발맞춰 디자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현재 전환기에 놓인 한국에서 디자인의 역할에 관한 전망도 내놓았다.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가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산업 수요가 커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기존 교육 시스템으로는 늘어난 산업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창의성을 키우지 못해 새로운 기술적 격차가 생겨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크리스티안스 학부장은 “이런 상황에서 디자인이 크게 기여할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자인을 그저 스타일링이나 외관상의 문제만을 다루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디자인은 제품과 서비스 개발 모두를 아우르므로 기업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관점에서 디자인은 ‘공학, 인체공학, 미학, 혁신경영과 마케팅의 통합’이다. 통합적인 역량을 가진 디자이너가 전체 개발 단계에 참여하는 애플과 같은 기업이 디자인을 통해 혁신을 가져오는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는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려면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며 “UNIST의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는 미래의 경제 혁명에 대응할 수 있는 해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안스 학부장은 디자인 교육과 정보처리, 인지과학, 인체공학 분야에서 3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 다양한 나라에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며 네덜란드는 물론 아시아, 남미, 남유럽 등에서 디자인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Journal of Design Research’ 의 공동설립자이자 편집장도 맡고 있다.
아래는 헨리 크리스티안스 학부장과 1문 1답
Q1. 당신이 이야기하는 ‘아주 새로운 디자인 스쿨’은?
A1. 디자인은 세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눈이다. 공학이나 디자인, 경영학 등이 어우러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각 학문의 지식을 갖추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혁신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앞으로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를 ‘통합(Unifying)’하려고 한다. 현재 학문별로 쪼개져 있는 커리큘럼과 교육과정을 연결하고 싶다. 이를 통해 ‘창의성(Creativity)’을 이끌어내는 최선의 커리큘럼을 짤 계획이다.
Q2. 과거 디자인 스쿨을 구축했던 경험을 어떻게 활용한 것인지?
A2. 포르투갈에 있는 민호대(Minho University)에 디자인 학부를 구축했다. 이 대학에는 산업디자인을 다루는 학부가 없었는데, 저와 다른 교수들이 투입돼 공학 기반의 디자인 학부를 세웠다. 대부분의 디자인 스쿨은 미학이나 예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민호대의 경우는 이와 달리 공학을 기반으로 디자인을 결합했다. 이를 통해 산업적으로도 파급효과를 높이고자 했고, 실제로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는 학문적 연구에 치중된 경향이 있다. 물론 좋은 저널에 논문을 내거나 기초적인 부분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중요하다. 하지만 연구의 근본적인 목적은 쓸모에 있다. 우리의 연구 성과가 사람들의 삶에 기여해야 한다. 저는 학문뿐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디자인 스쿨을 만들고 싶다. 우리가 진행한 디자인 프로젝트들은 기업에 도움을 주거나 세상에 나와 윤택한 삶에 기여할 것이다. 민호대의 디자인 스쿨의 경험은 여기서 활용될 것이다.
Q3. 델프트공대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독특해 보인다. 이런 교육은 네덜란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A3. 델프트공대에서 진행했던 ‘소규모 상점 디자인(Retail Design)’ 교육과정은 큰 개념의 디자인이다. 상품 하나만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의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설계하는 과정이 모두 포함된다.
주로 남성복을 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진 브랜드에서 여성복을 만들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브랜드는 단순히 여성복뿐 아니라 여성이 좋아하는 공간을 창조해야 한다. 그들의 취향과 기호까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창의성을 이끌어 내는 디자인 스쿨을 만드는 게 제 비전이다.
네덜란드에는 디자인을 전공한 많은 전문가들이 디자인 스튜디오로 진출한다. 또 기업으로 가서 디자인적인 부분을 채워준다.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에서 길러낸 인재들도 이처럼 학문과 산업을 잇는 훌륭한 다리가 될 것이다.
Q4. 디자인 교육에 있어서 동양의 교육방식이 불리한 편이다. 어떻게 보완할 건가?
A4. 아시아 사람들의 경우 초등학교부터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발견이나 창조보다는 반복적으로 외워서 지식을 습득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창의성이 숨어버리기 쉽다. 저는 그걸 이끌어낼 수 있는 디자인 프로젝트 중심의 교육과정을 꾸리고 싶다.
특히 디자인이나 디자인 교육은 다른 분야와 달라야 한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자인을 하고 배움을 얻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고정된 게 아니라 열린 자세로 구성원에게도 배우는 게 필요하다.
Q5. UNIST의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수장을 수락한 이유와 포부가 궁금하다.
A5. 2011년 열린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UNIST에 처음 와봤다. 대단히 멋지다는 느낌을 받았다. 3년 된 학교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시설과 교육체계 등이 잘 갖추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UNIST의 슬로건인 ‘First in Change’가 제 삶의 신조인 ‘To bring Change’와 닮아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기뻤다. 발전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게 당초 맡겨진 임무 같기도 했다. 새로운 일을 맡은 만큼 잘 해내고 싶다. 디자인 스쿨을 잘 꾸려서 세계 10위권에 드는 멋진 학부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