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네이처’ 표지를 뛰어오르는 개구리(jumping frog)와 ‘Jumping geneomes’이라는 문구가 장식했다. 오랫동안 실험동물로 이용됐던 아프리카발톱개구리(Xenopus laevis)의 유전체가 해독된 결과가 실렸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7개국 연구진이 공들인 이번 거대 프로젝트를 주도한 한국인이 있다. 바로 생명과학부의 권태준 교수다.
권 교수는 미국 텍사스주립대(어스틴)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2009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당시 유전체 시퀀싱 기술이 막 등장해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물의 유전체가 해독되고 있었다. 권 교수는 우연히 뉴욕타임즈에 실린 본 박태주 교수의 논문을 보고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가능성을 깨달았다. 지도교수와 개구리 유전체를 해독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운 좋게 연구비가 확보되면서 이번 결과를 얻게 됐다.
그는 “논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60여 명 정도인데 실제로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하는 전산 쪽 작업이 가능한 사람은 두 명뿐이라 여러 부분에 관여하게 됐다”며 “시차 때문에 연구하는 동안 고생도 많이 했는데 논문이 나오니 오랜 숙제가 끝난 기분이라 개운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독특한 염색체 특성(4배체)은 진화의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이 개구리가 쥐나 원숭이 같은 기존 실험동물로 한계에 부딪힌 난치병 연구의 해결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를 만나 이번 연구에 대한 해설을 듣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1. 이번 연구 결과의 의미를 짚어주신다면?
생물학자에게 중요한 도구 중 하나가 ‘다루기 쉽고 사람과 비슷한 동물 모델’입니다.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효모나 꼬마선충, 초파리처럼 실험실에서 쉽게 다룰 수 있고, 유전적으로도 사람과 비슷해서 오래 전부터 이용돼 왔습니다.
체외 수정하는 동물이라 알을 짜서 정소를 뿌려주면 쉽게 수정란을 얻을 수 있고요. 알이 크고 발생 단계의 올챙이가 투명해서 여러 장기 발생 과정 전반을 쉽게 관찰할 수 있거든요. 또 알에 유전자 조절 물질을 찔러 넣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실험 모델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실험을 통해서는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내기 좋습니다.
하지만 이 개구리로 오믹스나 유전체 편집 등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연구를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4배체 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유전체 해독이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번 프로젝트 결과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4만여 개의 유전자 정보를 확보한 만큼 ‘개구리를 이용한 인간 질병 유전자 연구나 신약 개발’ 등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유전체 기반 시스템 생물학 연구나 유전체 편집 연구 등에도 아프리카발톱개구리가 적극적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이죠.
Q2.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동물에서 보기 드문 ‘4배체 종’이라고?
배체수는 체세포 내에 있는 염색체 그룹의 수를 뜻합니다. 인간을 포함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생물들이 부모에게 각각 1개씩 염색체 그룹을 물려받는 2배체 종입니다. 식물의 경우 잡종교배 등을 통해 배체수가 늘어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은 이 균형이 깨지게 되면 세포가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입니다. 이 때문에 동물의 세포는 세포 분열 과정에서 이 균형을 정확하게 유지하기 위한 많은 기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질병 가운데에서도 다운증후군이나 암과 같은 유전자에서 일부 염색체가 선택적으로 2배체가 아닌 다른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보고되기도 하는데요. 이 경우 배체수 변화에 의한 유전자 불균형으로 인해 여러 가지 유전자의 발현 및 기능에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배체수 변화는 자연계에서 잘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진화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척추동물은 전체 유전체 배체수가 늘어나는 과정을 두 번 거쳤습니다. 진화적으로 배체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바로 새로운 기능의 유전자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작으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적절한 모델이 없어서 이러한 배체수 증가에 따른 유전자의 진화적 의미를 연구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유전체 해독으로 동물 진화에서 배체수 변화에 어떤 원리가 적용되는지 알 수 있게 됐습니다.
Q3. 이번 프로젝트에서 맡은 역할은 어떤 것인지?
이번 논문의 1저자는 한국 그룹의 권태준, 미국 그룹의 아담 세션(Adam S. Session), 일본 그룹의 요시노부 우노입니다. 요시노부는 유전체의 구조를 실험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주로 맡았고 저와 아담은 주로 여러 가지 형태의 방대한 양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는 컴퓨터 작업을 주도했습니다. 특히 저는 발현된 유전자의 mRNA에서 유래된 작은 염기서열 조각들을 분석하여 유전자 발현 양을 분석하는 RNA-seq 데이터 분석을 주도했고, 이를 바탕으로 복제된 유전자의 발현 양상을 바탕으로 그 기능을 예측하는 분석을 진행 했습니다.
그밖에도 전체 연구진 중에 컴퓨터 분석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염색체 해독에서부터 기능 분석까지 많은 영역에 관여하게 됐습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보다 중간에 새로운 실험들과 그에 따른 데이터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프로젝트 진행은 더 어려워졌지만, 그만큼 많은 검증을 거치게 돼 결과적으로 신뢰도는 더 높아졌습니다.
Q4. 아프리카발톱개구리를 연구주제로 삼은 이유가 있다면?
2009년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당시 이웃 실험실의 동료로 계시던 UNIST 박태주 교수의 논문 내용이 미국 뉴욕타임즈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시스템 생물학을 이용해 효모에서 혈관 형성에 관련된 유전자를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효모에서 찾아낸 새로운 혈관 형성 유전자들을 아프리카발톱개구리로 빠르게 검증할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다루기 쉬우면서도 세포주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혈관 형성이나 장기 발생과 같은 복잡한 형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이 동물이 실험 모델로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저처럼 시스템 생물학에서 많은 유전자의 기능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최적의 시스템이었죠.
당시는 차세대 DNA 시퀀싱 기술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지도교수와 학교에 새로 도입된 기기의 활용을 의논하다가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유전체 해독’을 제안했던 게 프로젝트의 시작이 됐습니다. 운 좋게 연구비가 확보됐고 여러 연구자들과 협력 연구를 진행하면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과 UNIST 임용 후 2년까지 총 7년의 시간을 거쳐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점들도 많이 있었지만 제 연구를 통해서 아프리카발톱개구리를 동물 실험 모델로 구축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합니다. 이제부터 이를 이용한 제 연구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습니다.
Q5. 앞으로의 계획은?
개구리 시스템에서 가장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 발생학 분야도 재미있지만, 제 공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개구리를 인간 질병을 연구하는 일종의 ‘도구’로 삼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생체모사 장기 칩’에서 장기의 기능 연구나 신약 시험을 하는 것처럼 기능 유전체 기반 오믹스 기술을 개구리와 접목시켜 다양한 유전자나 질병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쥐보다 여러 면에서 다루기 쉬워서 실험 결과를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대량으로 실험을 진행할 수 있어서 인간 집단 유전체 변이 연구와 같은 분야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숙주-미생물 상호작용 연구와 같이 기존에 개구리 시스템을 사용해서 잘 다루어지지 않던 분야에서도 개구리 기반 실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UNIST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배체수가 다른 제노푸스 개구리 2종을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습니다. 국내에서 아프리카발톱개구리를 모델 동물로 이용하는 분들이 약 10여 분 정도 계시는데, 이렇게 연구시설이 갖춰진 곳은 없어요. 저는 먼저 임용되신 박태주 교수님이 기반을 잘 구축해 두신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