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를 이루는 별들의 이름은 신화 속 영웅의 이름을 딴 경우가 많다. 그들의 이야기가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웅은 하늘 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늘 우리 주변을 지켜주는 소방관처럼 지상 위 ‘영웅’들도 별처럼 빛난다. 그 반짝임에 반한 것일까, 별을 동경하던 학생들이 모여 지상 위 ‘별’들을 지키기 위한 기술개발에 나섰다. 더 이상 ‘별이 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엘바(ELBA) 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UNIST 창업팀 엘바(ELBA, 대표 구주원)는 소방관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통신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 간의 의사소통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마스크와 안전모 등을 착용한 소방관들이 소음 가득한 현장에서 무전기로 소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긴박한 현장에서 의사소통 문제는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통신 문제를 개선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로 부각돼왔다.
엘바는 이 통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음성인식을 기반으로 한 근거리 통신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마이크가 연결된 장비로 전달된 소방관의 음성을 글자로 변환하고, 변환된 글자를 안전모 안면 부분에 빔 프로젝터로 표현해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는 ‘소리를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뒤집어 ‘소리를 눈에 보이게’ 하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작은 발상의 전환은 실현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가 됐다. ‘뒤집어 생각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가능(ABLE)’을 뒤집어 만든 ‘엘바(ELBA)’가 이들의 팀명인 이유다.
구주원 대표는 “화재현장에서 서로의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고,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안전하고, 효과적인 소방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며 “우리가 만든 기술로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별 보러 모인 친구들, 별을 구할 창업을 꿈꾸다
엘바는 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17학번 동기 세 명(구주원, 강한, 김상훈)이 모여서 꾸린 창업팀이다. 전공이 같은 세 친구는 동아리도 같다. 모두 별을 좋아해 천체관측 동아리 아스트랄에 가입했다. 자주 같이 어울렸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그만큼 많이 나눴다.
처음 창업 이야기를 시작한 것도 동아리 경험에서부터였다. ‘AR(증강현실)을 활용해 별자리를 읽는 앱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김상훈 학생의 제안에 구주원 대표가 의기투합해 창업팀을 꾸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즈음 발생한 제천화재는 창업팀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꿨다. 소방관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게 더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주원 대표와 김상훈 학생은 AR 등 신기술을 적용해 ‘소방관의 사고를 막자’는 생각으로 아이디어를 고안했고, 강한 학생이 여기에 합류했다.
2017년 12월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한 세 명의 학생들은 빠르게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나갔다. 그 결과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이 UNIST에서 청년창업 간담회를 가졌을 때, 자신 있게 창업아이템을 소개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엘바의 창업아이템에 대해 “소방대원들이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들, 통신을 해결하기 위한 장비네요”라며 관심을 보였고, “좋은 제품을 만드셨다, 아이디어 잘 살려서 성공한다면 최대한 관심 있게 돕겠다”고 응원하기도 했다.
자체 음성변환 기술과 최적의 디자인으로 제품 완성 꿈꾼다!
“아직 완성된 장비를 내놓진 못했지만, 우리만의 기술과 디자인으로 최고의 제품을 선보일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엘바의 아이디어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 소방관이 사용하려면 개발이 더 필요한 상태다. 완성형 장비로 거듭나기 위해서 엘바가 집중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정확한 음성 변환 체계’, 두 번째는 ‘최적의 하드웨어 디자인’이다. 팀원들은 이를 통해서 ‘음성 → 문자 → 표시’ 세 단계를 최적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엘바는 음성 변환(STT, Speech to Text)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자체적인 음성인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처음엔 구글이나 네이버 등의 음성인식 기술을 사용하는 걸 고려했지만, 소방관이 처한 특수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마스크 등 장비를 착용하면 발음이 달라지고, 또 현장에서 사용하는 특수용어가 많아 일반적인 음성인식 기술로는 적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엘바는 실제 소방현장의 언어와 발음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언어 인식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중이다. 기계학습을 통해 실제 소방관들의 소리를 녹음하면 더욱 정확한 음성인식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김동은 학생(기초과정부)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엘바가 야심차게 영입한 인재다. 고교시절부터 인공지능, 딥러닝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김동은 학생은 UNIST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됐던 지난 3월, 엘바의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는 “지금껏 공부해온 인공지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던 중에 공고를 봤다”며,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엘바 팀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구주원 대표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경험 많은 개발자를 영입할 생각으로 공고를 냈는데 신입생이 지원했다고 들었다”며 “처음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니 동은이가 엘바에 꼭 필요한 친구였다”고 면접 뒷이야기를 전했다.
두 번째 엘바가 집중하는 부분은 기존 장비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하드웨어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엘바의 아이템은 마이크, 음성인식 및 변환장치, 빔 프로젝터 등으로 구성된 장비다. 그리고 이 장비는 현재 소방대원이 사용하는 안전모에 부착(Add-on)하는 형태다. 이유는 간단하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안전모를 제작하려면 너무 많은 예산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현재 초기 디자인을 통해 만들어진 장비도 부착해 사용하는 형태인데, 엘바는 이 초기 디자인에 실제 소방관의 의견을 반영해 새로운 디자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사용하면서 불편함은 없는지, 개선점은 무엇인지를 찾으면서 최적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소방관과 함께” 소방관 구할 기술 개발 박차
엘바는 지난 6월 14일(목) 울산 중부소방서 범서119안전센터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측은 협약을 통해 현장소방대원간 근거리 시각적 무선 통신장치 제작을 위한 상호협력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엘바가 제작하고 있는 장비들을 소방관들이 직접 사용해보고 훈련하면서 보완점을 찾고 장비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시제품을 제작 중에 있는 엘바는 하반기에 제품을 완성해 소방관들이 실제로 사용해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보완점을 발굴하고, 연구도 이어나가려는 것이다.
또한 엘바는 음성인식과 문자 표시 외에도, 산소탱크 압력을 측정해 산소잔량을 표시하거나, 사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험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할 계획도 세웠다.
구주원 대표는 “다양한 기능을 통해 소방효율을 높이고 생명을 지키는 일을 돕고 싶다”며 “소방관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팀원 모두가 힘내서 노력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