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크고 턱은 갸름한데 콧대는 제대로 살지 못했다. 하늘을 향해 뚫린 콧구멍이 큰 눈과 어우러져 귀여운 인상을 남긴다. 첫눈에 반하기는 어려운 모습이지만 진가를 알면 좋아할 수밖에 없다. UNIST 첨단생체소재연구동 223호에 살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아프리카발톱개구리(Xenopus)’다.
아프리카발톱개구리를 UNIST에 들여온 사람은 박태주 생명과학부 교수다. 그는 100여 마리의 암컷 개구리를 기르며 ‘얼굴 형성’에 대해 연구한다. 이마와 코, 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유전자가 관여하는지 밝혀내는 게 그의 목표다. 박태주 교수는 “유전질환의 20~30% 정도는 얼굴 형성에 관한 유전자와 관련돼 있다”며 “얼굴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파악하는 것은 질병 예방이나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구리를 활용하는 연구실도 드문 한국에서 ‘개구리 얼굴’을 살피는 박 교수는 눈에 띄는 존재다. 9개의 수조에 15마리 정도씩 개구리를 넣고 기르는 그의 연구실을 방문해 그가 진행하는 형태형성연구에 대해 들어봤다.
발생학자의 오래된 친구, ‘개구리’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100년 넘게 사용된 실험동물이다. 체외수정을 하는데다 알이 투명하고 커서 수정란이 분할하는 과정을 관찰하기 좋아서다.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생물학자, 존 거든 경(Sir John Bertrand Gurdon)도 아프리카발톱개구리로 실험했다.
박태주 교수는 “오랫동안 활용되다 보니 수정란이 2개, 4개, 8개로 쪼개졌을 때 각 부분이 무엇이 될지 보고돼 있다”며 “원하는 부분만 돌연변이로 만들 수 있어 초기 발생을 관찰하기에 아주 적절한 동물이 개구리”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와 개구리의 인연은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시작됐다. 대학원 전공을 탐색하던 중 존 월링포드(John B Wallingford) 교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박 교수는 “월링포드 교수가 보여준 동영상에서 세포가 조직으로 변하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며 “세포가 모여 조직을 만들고, 그것이 다시 장기와 성체로 변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원래 신약 개발 분야를 염두에 두고 유학을 떠났단 박 교수였지만 이 동영상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이후 월링포드 교수를 지도교수로 선택해 개구리를 활용해 다양한 발생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눈은 동그랗고, 팔은 길쭉하고, 간이나 위는 각각 독특한 모양을 가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모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데, 그 안에 어떤 원리가 숨어 있는지 밝히는 게 형태형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작은 세포가 연골, 얼굴로… 유전질환 원인 파악에도 중요
“얼굴뼈는 처음부터 단단한 뼈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연골이 먼저 만들어진 뒤 딱딱하게 굳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개구리 얼굴은 사람이나 쥐에 비해 단순하기 때문에 어떤 유전자가 얼굴 형성에 관여하는지 찾아내기 쉽죠.”
물고기처럼 생긴 배아에서 아가미 즈음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세 개의 마디가 얼굴로 분화되는 부분이다. 맨 윗부분 아치 모양의 마디는 얼굴 윗부분으로, 가운데 마디는 얼굴 아랫부분으로, 맨 아랫마디는 턱으로 각각 분화한다.
박 교수는 “각각의 세포들이 정해진 위치와 모양대로 만들어지는데 이런 신호가 어디서 비롯되고 언제 나타나게 되는지가 관심사”라며 “현재 얼굴 연골을 만드는 유전자 후보를 찾아내 이 유전자의 작동 원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의 유전자 중 많은 부분이 발생 단계에서 사용되고 이후에는 쓰이지 않는다. 이들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면 각종 유전질환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발생학은 질병 연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로 얼굴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나 신호전달체계가 암 억제 등을 조절한다고 알려진 경우도 있다.
박 교수는 “세계적으로 얼굴 형성에 관한 연구가 시작 단계에 들어서 있기는 하나 연구가 부족한 편”이라며 “개구리 연구로 발견한 세포생물학적, 유전학적인 메커니즘을 질병 원이 파악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면접 때 ‘연구에 개구리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최고 수준의 실험실을 만들어줄 정도로 확실하게 지원해주는 곳이 UNIST”라며 “좋은 환경에서 연구하는 만큼 곧 인류의 삶에 공헌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