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is, Deux, Un, En piste!(셋, 둘, 하나, 시작!)”
프랑스어로 촬영 시작 신호가 내려졌다. 카메라를 든 촬영감독이 녹화 버튼을 누르자 장갑을 낀 연구원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연구원 옆에 놓인 로봇손이 그 동작을 그대로 따라했다. ‘휴먼-로봇 인터랙션 시스템(Human-Robot Interaction System)’으로 사람 손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해 로봇 손을 조정하는 기술이다. 특수장갑은 가상현실 속 물체의 역감, 촉감을 손으로 전달하는 방향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이런 최첨단 로봇기술에 프랑스 다큐멘터리 제작사, 엘렉트롱 리브르(Electron Libre)가 주목했다. 한국의 자연과 전통문화유산, 첨단기술, 지속가능한 에너지 개발 등을 주제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에 UNIST의 로봇기술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14일 UNIST를 방문한 이들은 배준범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팀에서 연구 중인 다양한 로봇기술을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배 교수팀은 로봇손을 제어하는 특수장갑, 로봇팔을 움직일 수 있는 착용형 센서 시스템은 물론 보행을 도와주는 로봇 등을 시연하며 한국의 로봇기술을 보여줬다.
배 교수는 “휴먼-로봇 인터랙션 시스템은 현재 활발하게 연구되는 분야”라며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로봇 자체에 지능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 소통을 통해 로봇을 제어하고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재활 치료나 재난 현장에 투입된 로봇의 원격제어, 나아가 가상현실 속 물체의 촉감 전달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배 교수는 “영화 ‘아바타’나 ‘퍼시픽림’에 나오는 장면에 비하면 현재의 기술은 초보적인 수준”이라면서도 “언젠가 반드시 영화 속 장면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팀이 개발한 특수장갑은 가상현실 속에 있는 물체의 촉감을 손으로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손가락 마디마다 소형 구동장치나 진동자가 부착돼 있어 물체의 무게나 외부 상황에 의해 발생하는 진동이나 힘을 구현하는 것이다. 손에 이런 자극이 전달되면 우리 뇌는 특정 물체를 만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 기술이 발전하면 TV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직접 물건을 만져보고 사는 것도 가능해진다.
배 교수는 “사람에 더 가까운 디자인을 개발하고, 구동장치를 가볍고 유연한 방식으로 제작하는 등 기술적으로 남은 과제는 많다”면서도 “이 기술이 완성되면 아버지와 아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을 전할 수 있는 등의 공존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존현실의 구현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은 기욤 베르나르(Guillaume Bernard) PD는 이런 로봇 기술이 가까운 미래에 어떻게 활용될지 등에 대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에 대해 배 교수는 “휴먼-로봇 인터랙션 시스템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라고 대답했다.
우선 특수장갑은 손 재활에 활용 가능하다. 환자의 손가락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으며, 손 재활에 필요한 움직임을 특수장갑을 이용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또 다리의 움직임을 보조할 수 있는 외골격 로봇은 보행이 불편한 사람도 걷게 만들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재난 현장에 로봇을 투입하고 원격으로 정교하게 제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배 교수는 “SF영화는 과학기술의 수준보다 앞서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영감을 주는 것 같다”며 “누군가 꿈꾸는 사람이 있으면 그 꿈을 실현시키는 사람도 나타난다”며 로봇기술의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한편 이번에 촬영한 다큐멘터리는 프랑스 공영방송 France 5, Ushuaia TV, TV5MONDE 방송사 공동으로 배포된다. ‘어 씨엘 우베르(A Ciel Overt)’라는 제목의 이 시리즈는 총 12회로 구성되며 세계 각국의 자연과 전통문화유산, 첨단과학, 지속가능한 에너지 개발 등을 주제로 제작되고 있다. 배 교수팀의 촬영분은 52분으로 편성된 한국 편에서 4~5분 정도를 차지하며, 올해 10~11월 중에 방송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