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합성에선 설거지가 기본입니다. 반응용기에 다른 물질이 들어가면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거든요. 예전엔 주부습진에 걸릴 정도로 설거지한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험들이 쌓여야 화학합성의 실력이 되는 겁니다. 신소재라는 게 이론만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백종범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설거지를 잘 한다. 화학물질 합성에 필요한 그릇들도 소중히 다룬다. 학부시절부터 약 30년 동안 그가 씻어낸 물질들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수많은 설거지 끝에 세상을 놀라게 할 물질이 탄생했다. 2015년 3월 6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된 C₂N이다.
당시 그래핀을 능가할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소개된 C₂N은 다른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2월 14일자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된 Ru@C₂N이 대표적이다. 이 물질은 물을 전기분해하는 촉매로서 백금만큼의 성능을 보였다. 핵심 재료인 루테늄의 값은 백금의 4% 수준이므로 경제성도 확보할 수 있다.
루테늄을 지지하고 있는 C₂N은 탄소와 질소가 2:1의 비율로 일정하게 배열된 채 균일하게 구멍이 뚫려 있는 물질이다. 그 자체로 반도체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반도체 분야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차세대 반도체 소재 구상부터 발표까지 5년
“반도체 공정이 미세해지면서 실리콘 다음 재료로 그래핀에 기대가 모아졌어요. 그런데 원래 전기가 잘 통하기만 하는 그래핀의 특성을 바꾸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죠. 그래서 물질 자체가 반도체 성질을 갖도록 합성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핀은 탄소 6개가 육각형으로 배열된 구조다. 백종범 교수는 그 사이에 다른 원자를 넣어 구멍을 뚫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자연스레 반도체 성질을 가진다고 본 것이다. 그때 머릿속에 연구한 ‘피라진(Pyrazine)’ 구조가 떠올랐다.
“피라진은 탄소-수소 6개가 육각형 고리로 이뤄진 벤젠(Benzene)에서 마주보고 있는 탄소-수소 2개가 질소(N)로 바뀐 물질입니다. 육각형에 질소 2개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구멍이 생기죠.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반도체 성질을 띨 거라고 봤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백 교수는 당장 합성에 나서려 했다. 그런데 일을 진행할 연구원이 마땅치 않았다. UNIST 개교 초기라 화학합성에 경험 많은 연구원이 드물었던 것. 하는 수 없이 백 교수가 직접 고무장갑을 끼고 나섰다. 막 들어온 파키스탄 출신 박사 과정 연구원을 옆에 두고 설거지부터 가르치며 3주간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지냈다.
3주간 매달린 결과 백 교수의 예상이 실현됐다. 탄소 원자 4개에 질소 원자 2개가 육각형을 이룬 C₂N이 만들어진 것이다. C₂N의 재료가 되는 6개의 아민(Amine)기를 가진 물질과 6개의 케톤(ketone)기를 가진 물질을 용기에 넣고 교반시키면 분자끼리 반응하는데, 이때 물과 함께 C₂N이 합성된다. 백 교수는 “반응 전후의 에너지 차이가 워낙 커서 교반만으로도 쉽게 물질이 합성된다”며 “오랜 화학합성의 경험과 노하우가 만나 최적의 물질을 합성해냈다”고 말했다.
C₂N은 예상대로 반도체 특성을 보였다. 실제 실험에서도 실리콘 반도체보다 성능이 100배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백 교수는 당장 사이언스(Science)에 논문을 투고했다. 그런데 두 번의 심사를 거치는 동안 논문 심사자들이 까다롭고 공격적으로 나왔다. 처음 보는 강력한 물질을 한국의 연구진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심사자들은 주사터널링현미경(STM) 이미지을 요구했다. 만든 물질의 결정구조를 보여 달라는 것. 주변 환경 변화에 민감한 유기물 결정 구조를 STM으로 촬영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4년 동안 심사위원과 공방하며 STM 이미지까지 보냈다. 그런데 결론은 탈락이었다.
“마지막 답변은 ‘훌륭한 연구이지만 사이언스에 실을 만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변방에서 진행한 연구라 진입장벽이 높았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다른 저널에서 논문을 발표했죠. 그래도 지금은 많은 이론 및 실험 물리학자나 생명공학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어요. 발표된 지 2년 만에 많이 인용된 거죠. 그만큼 우수한 물질이라는 걸 자부합니다.”
화학합성의 기본은 ‘설거지’… “성실한 연구자가 성공한다”
C₂N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반도체로서 가능성은 이 물질 발표와 함께 보였고, 물 분해 촉매로 응용은 Ru@C₂N에서 드러났다. 구멍 있는 구조를 활용해 기체를 저장하는 물질로 발전시킬 수도 있고, 다른 금속을 붙여 진단용 의료기기와 함께 쓰는 화학물질로도 응용 가능하다.
백종범 교수는 “C₂N은 쉽게 합성할 수 있어 상용화 측면에서도 효과적일 수 있다”며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팔방미인임을 증명하기 위한 후속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화학합성은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실제로 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부지런히 물질을 반응시키고 설거지하는 사람이 경험이 쌓이고 좋은 열매를 얻게 된다.”며 화려한 논문 뒤에 숨은 부지런함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