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박종화"

[박종화의 게놈이야기(35)] 한국인은 동남아시아에서 왔다?

[박종화의 게놈이야기(35)] 한국인은 동남아시아에서 왔다?

범아시아 유전 다양성 연구 사업으로 인해 에디슨 류가 싱가포르에서 미팅을 개최하게 됐고, 결국 2009년 12월 그 결과가 컨소시엄 논문으로 발표됐다.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에서 진행된 가장 큰 규모의 생물학 협력 연구였다. 이 프로젝트의 데이터는 방대했다. 2,000명...

[박종화의 게놈이야기(34)] 국가유전체정보센터

[박종화의 게놈이야기(34)] 국가유전체정보센터

2005년 3월부터, 카이스트에서 국가유전체정보센터장으로 이직했다. 한국에 온 이후로 다시 한번 커다랗고 행복한 기대를 하게 됐다. NGIC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센터로, 게놈 정보를 전문적으로 수집, 연구, 유통하는 곳이었다. 이곳은 전임 센터장인 김상수 박사에 의해...

[박종화의 게놈이야기(33)] 게놈전문회사들

[박종화의 게놈이야기(33)] 게놈전문회사들

마크로젠이란 회사가 한국에 있는데 서울대의대 서정선 교수가 설립한 회사였다. 1997년에 게놈 관련 사업을 추구하면서 설립이 됐는데 주로 생어방식의 서열해독을 해주는 회사였던 것으로 안다. 초기에 생정보학 연구자를 10여명 영입했으나 나중에 그 부서의 크기가 줄었다....

[박종화의 게놈이야기(32)]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박종화의 게놈이야기(32)]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2003년 바이오시스템학과는 그 이름만 보면, 게놈에서 트랜스크립톰(전사체), 프로티옴(단백체)를 통해 세포와 생물이 어떻게 네트워크를 이용해 복잡한 조절작용을 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진 과이다. 설사 그 당시의 교수들이 바이오시스템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박종화의 게놈이야기(30)] 차세대 해독기 등장

[박종화의 게놈이야기(30)] 차세대 해독기 등장

차세대 해독기는 2000년대 초부터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실질적인 기술은 이미 1990년대 말에 완성돼있었다. 단지 이런 기술들을 통합해, 하나의 파이프라인이나 장치로 못 만들었을 뿐이다. 내가 1998년 1월 1일부터 하바드의대의 조지 처치 랩에서 일했을 때,...

[박종화의 게놈이야기(29)] 초기 게놈해독역사

[박종화의 게놈이야기(29)] 초기 게놈해독역사

생어 이전에도 염기서열을 해독한 사람들이 있다. 염기서열 해독은 RNA의 해독에서 먼저 시작됐다. 벨기에의 월터 피어스가 겐트대학에서 1972년 최초의 유전자 서열과 최초의 RNA 게놈 서열(1976)을 해독해 냈다. 그 뒤 미국 하버드대학의 막삼과 길버트가 1973년...

[박종화의 게놈이야기(28)]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료

[박종화의 게놈이야기(28)]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료

1990년대 말, 생어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게놈연구소로서 세계 게놈학문을 주도하고 있었다. 100대가 넘는 생어식 DNA해독기를 설치하고,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양의 컴퓨터 저장장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내 친구 알렉스 베이트만이 그 시설을 보여줘 내부를...

[박종화의 게놈이야기(27)] 케임브리지의 생어 게놈 캠퍼스

[박종화의 게놈이야기(27)] 케임브리지의 생어 게놈 캠퍼스

생어연구소는 내가 박사학위를 할 때 설립 됐다. 내 지도교수 팀 허버드는 1996년 MRC센터에서 생어연구소의 그룹리더로 이직을 했다. 케임브리지의 생정보학 관련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에 생어연구소와 EBI등으로 옮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생어연구소는 게놈관련 전문 연구...

[박종화의 게놈이야기(26)] 하버드 의대 유전학과-생물학 연구의 천국

[박종화의 게놈이야기(26)] 하버드 의대 유전학과-생물학 연구의 천국

조지 처치랩은 하버드에서 가장 친근한(Friendly) 랩이라고 소문이 나있었고, 가장 가고 싶은 랩이라는 것이 그 당시 학생들 사이의 의견이었다. 하버드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생정보학을 하고, 게놈 연구와 바이오칩을 하는 곳이었다. 내가 갔을 당시에 처치랩은 하버드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