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07년 가막못 근처에 터를 잡고, 2009년 국립대학교법인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의 문을 열었습니다. 2015년 과학기술원으로 전환된 UNIST는 세계적 과학자가 모인 뛰어난 연구중심대학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즈음 UNIST는 ‘우수한 연구가 실험실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창업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유망한 기술을 선별해 창업을 장려하고, 단계별 투자유치를 지원하며, 창업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그 노력이 조금씩 열매를 맺어 요즘 ‘UNST 창업기업’들이 내놓은 좋은 소식이 많습니다. First in Change 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한 UNIST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UNIST Pioneers]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창업기업에게 ‘생존’은 숙명입니다. 환경이 계속 변해도 끝까지 살아남은 ‘사피엔스(Sapiens)’처럼 계속 진화해야죠. 사피엔반도체도 그렇게 변화를 체질로 삼고 계속 성장할 계획입니다.”
사피엔스는 변화무쌍한 지구환경에 적응해 인류 종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 비결을 배워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기업이 있다. 2017년 8월 UNIST 교원창업기업으로 시작해 2024년 2월 코스닥 상장기업이 된 ‘사피엔반도체(대표 이명희)’다. 구글과 메타, 애플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스마트 안경(smart glass)’ 개발에 나서면서 사피엔반도체 주가도 연일 치솟고 있다. 스마트 안경에 꼭 필요한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를 구동하는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는 사피엔반도체가 글로벌 강자이기 때문이다.
이명희 대표는 “증강현실(AR)이나 생성형 AI가 구현되는 스마트 안경의 디스플레이는 밝고 선명하며, 전력을 적게 쓰면서도 반응 속도는 빨라야 한다”며 “결국은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를 쓸 수밖에 없는데 이 분야에서는 사피엔반도체 기술이 독보적”이라고 강조했다.
사피엔반도체는 반도체 설계만 전문적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이다. 자체 제조공장(파운드리)을 보유하지 않고 반도체 설계와 개발만으로 돈을 버는 것. 해외의 유명한 퀄컴(Qualcomm)이나 엔비디아(NVIDIA), 에이엠디(AMD)와 사업 모델이 같다. 이들 기업이 만드는 제품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 생성형 AI를 구동하는 GPU 칩이나 우리가 늘 사용하는 스마트폰 등 IT기술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사피엔반도체도 우리가 착용하는 스마트 안경을 구동하는 칩으로 매일 만나게 될지 모른다.
최근 사피엔반도체는 미국 빅테크 기업을 포함한 글로벌 고객과 공급계약 규모를 48억 원에서 95억 원으로 확대하면서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이명희 대표는 “2025년이 되면 기존의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시장의 90%를 마이크로 LED가 대체한다는 예측이 있었는데, 이제 시장이 열리고 있다”며 “사피엔반도체는 메모리인픽셀(MIP)라는 마이크로 LED에 특화한 기술로 특허를 선점한 만큼 앞으로의 성장도 기대된다”고 밝혔다.
올해 8월 29일 창업 8주년을 맞은 사피엔반도체는 ‘코스닥 상장’이라는 큰 목표를 이뤘다. 4년 주기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도전에 나서는 이명희 대표에겐 새로운 페이지가 또 시작된다. 이 대표는 “사피엔스가 살아남았던 비결은 계속 변화하고 서로 협력했던 데 있다”며 “사피엔반도체도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철학으로 꾸준히 성장하겠다”며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UNIST와 ㈜사피엔반도체가 ‘차세대 반도체 역량 강화 및 산학협력 모델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왼쪽부터 김영식 산학협력단장, 박종래 총장, 이명희 대표, 김재준 학술정보처장. | 사진: 특구육성팀
사피엔반도체는 9월 4일(목) UNIST와 MOU를 맺고 인적자원 교류와 R&D 협력을 추진한다. 이명희 대표에겐 2013년부터 2021년까지 UNIST에 교수로 재직했던 인연을 새롭게 잇는 것이다. 과거 UNIST가 지원했던 R&D, 특허 출원 및 등록 지원 등은 사피엔반도체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앞으로는 사피엔반도체 UNIST 출신 인재를 채용하기도 하고, R&D 협력도 도모하면서 상생하는 방법을 찾는다. 이 대표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창업을 통해서 전 세계에 뭔가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여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UNIST에서 시작하는 후배 창업가들에게 멘토로서도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이명희 대표와 일문일답
‘사피엔반도체’라는 이름이 독특합니다. 어떤 뜻을 담고 있나요?
창업할 즈음에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를 읽었어요. 우리가 조각조각 알고 있던 인류 역사가 참 잘 정리됐더라고요.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은 ‘호모 사피엔스가 신체적으로 가장 우월한 영장류가 아니었지만, 언어를 사용해 소통하고 집단지성을 가지면서 다른 호모보다는 훨씬 더 경쟁력을 가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내용입니다. 이게 우리 회사가 지향할 방향이라고 느꼈죠.
사실 회사는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요. 기업 하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수성(守成)’이 더 어렵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지켜내려면 어떤 식으로는 변하는 세계에 대응해야 합니다. 결국은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의 힘으로 소통하고 집단지성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남는 비결을 이어받기로 했죠. ‘새로운 환경에서도 계속 진화해서 살아남는 반도체’를 만들자는 뜻으로요.
그런데 사피엔스(Sapiens)는 고유명사여서 회사명으로 등록이 안 된대요. 할 수 없이 ‘S’를 빼고 ‘사피엔’과 반도체를 붙여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짓고 보니까 주변에서 ‘이름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회사 방향성이 담기기도 했고 촌스럽지 않아 잘 지은 것 같아요. 참고로 회사 로고는 디자인을 전공한 제 딸이 만들어줬습니다. 알파벳 A 위에 다이오드를 살짝 올린 것인데, 단순하면서도 좋더라고요.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가 미래에 꼭 필요할 기술이라는 걸 예상하셨나요?
어느 정도는 그렇죠. 제가 이전에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DDIC 개발팀장, 현대자동차 차량용 반도체 센터장으로 있었는데요. 산업계에 일하다 보니 산업 트렌드를 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고객 네트워크나 인재 네트워크 같은 것도 구축돼 있었고요. 그런 걸 통해서 ‘야, 이거 분명히 되는데 아무도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템이 있었어요. 바로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였습니다. 기술도 계속 진화하는데, 디스플레이는 과거 CRT(음극선관, Cathode-Ray Tube)에서 LCD(액정 디스플레이, Liquid Crystal Display), OLED(유기 발광 다이오드, Organic Light-Emitting Diode)로 발전했어요. 다음 차례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바로 마이크로 LED였습니다. 이쪽을 하면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한 번 해볼까’하는 욕구가 생기기도 했어요.
물론 사피엔반도체를 창업할 2017년 당시에는 아무도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에 주목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전자기기가 작아지면 다른 대안이 없다고 봤죠. 만약에 안경알이 디스플레이가 되어서 증강현실(AR)을 구현한다면 기존의 OLED로는 불가능하거든요. 참고로 마이크로 LED는 반도체 기판 위에 0.01밀리미터(㎜) 이하의 미세한 LED를 직접 올려서 만들어요. 0.01㎜는 A4 용지 두께 정도인데 그 정도로 작은 픽셀 하나하나가 따로 빛을 내죠. 밝고 선명하고 전력도 적게 쓰여요.

2019년 UNIST 106동 이명희 교수의 연구실에서 촬영한 (주)사피엔반도체 직원들의 모습. 당시 UNIST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창업의 마중물이 됐다. | 사진: 사피엔반도체 제공
‘꼭 되는 기술’이라는 확신이 있으셨네요. UNIST에서 창업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UNIST에 부임한 게 2013~2014년 정도인데요. 당시에는 ‘국립대학교법인 울산과학기술대학교’으로 5년이 안 된 초창기였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친하게 지냈고 믿는 후배인 전기전자공학과 변영재 교수가 전기전자공학과에 있었죠. 그 친구가 ‘산학협력중점교수 한 번 해보겠냐’고 제안한 게 인연이 됐죠. 보통 산학협력중점교수들은 학생 지도를 잘 안 하잖아요. 그런데 개교 초기여서 그랬는지 학생 지도가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관련 연구소 소속으로 학생을 뽑고, 연구과제도 따오고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을 나섰죠.
그런데 2015년에 과학기술원으로 전환한 UNIST가 창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연구실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때마침 문재인 정부도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연구실 셋업하고 정신없이 지내다가 창업할 만한 환경이 만들어지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창업에 눈이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내 창업 프로그램이 원동력이 된 거죠.
교내 창업은 일단 연구실을 쓸 수 있고, 창업 공간도 빌릴 수 있고, 무엇보다 초기 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고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에요. 106동 6~7층 공간에서 ‘사피엔반도체’라는 회사를 설립한 게 오늘에 이르게 됐네요.
창업 초기 투자유치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풀어나가셨나요?
‘UNIST’라는 브랜드 효과를 좀 봤어요. 그리고 저희가 창업했을 때 ‘선보엔젤파트너스’가 교내에 입주해서 UNIST 창업기업에 투자하면서 ‘팁스(TIPS)’ 선정도 도와줬어요. 선보엔젤파트너스가 1억 원을 투자했고, 2018년에 TIPS 선정되면서 5억 원을 확보했죠. 이후로도 후속 투자를 통해서 거의 15억 원 정도를 유치했습니다. 투자보다도 지원금에 가까운 자금이었어요. 이런 부분이 UNIST 창업기업으로서 누렸던 혜택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선보엔젤파트너스가 기술 가치를 인정해 부산의 기술보증기금(기보)과 연결해 줬어요. 기보에서도 20억 원 이상 대출 보증을 해줬는데, 이것도 UNIST에 특화된 대출 프로그램 덕분이었어요. 일반적으로 대출 요청을 하면 기껏해야 1~5억 원인데, UNIST 창업기업이기 때문에 30억 원까지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사피엔반도체는 기술 평가도 괜찮게 받아서 추가 투자도 받게 됐습니다.
투자 유치하면서 여러 기관에 저희 지분을 많이 양보한 것이 좀 아쉽긴 해요. 그때는 멋모르고 ‘자금 확보’라는 목표만 바라봤는데, 기술에 대한 가치도 고려했어야 하더라고요. 앞으로 UNIST에서 창업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이런 부분을 좀 살피고 코칭에 나서면 좋겠습니다. 교수가 기술에는 밝지만, 투자나 협상은 또 다른 전문영역이니까요.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가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이건 참 잘했다’ 싶은 일이 있을까요?
2019년 2월에는 증강현실용 CMOS 회로기판(Backplane) POC 제품 제작을 완료했어요. 이 제품으로 프랑스 A사와 ‘스마트 픽셀 드라이버 개발’ 공급 계약에 성공했죠. 이 계약을 계기로 사피엔반도체는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POC: ‘Proof of Concept’의 줄임말로 기술의 개념을 입증한 제품을 뜻함.)
아이디어를 구현한 POC 제품으로 인정받고 해외 고객을 확보한 게 저희가 자랑하는 부분입니다. 한국의 팹리스 업체들은 대부분 삼성이나 LG 등의 국내 대기업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산업계 경험을 통해 그런 전략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해외시장에서 고객을 찾는 전략을 선택한 거죠. 지금은 오히려 해외에서 훨씬 잘 알려진 회사가 됐고요. 요즘은 중국, 미국, 일본에 있는 고객을 위해 아주 바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사피엔반도체는 마이크로 LED 구동 칩에 필요한 회로기판을 설계하는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은 향후 스마트 안경에 필수로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 이미지 출처: 사피엔반도체 홈페이지
특허를 선점한 ‘메모리인픽셀(MIP)’ 기술이 핵심적이라고 들었어요.
메모리인픽셀(Memory-in-Pixel)은 디스플레이를 이루고 있는 픽셀마다 별도의 ‘메모리 셀’을 두고, 각 픽셀이 자체적으로 구동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기술 자체는 예전부터 있었는데 잘 쓰이지 않았어요. 기존 LCD나 OLED는 아날로그 구동 방식을 쓰기 때문에 픽셀마다 정보를 저장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마이크로 LED는 디지털 구동 방식을 사용하니까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요. 또 아날로그 방식처럼 높은 전압을 사용할 필요도 없어서 소비 전력도 확 줄일 수 있습니다. 픽셀마다 메모리가 있어서 밝기나 색상에 대한 데이터를 유지할 수 있죠. 저희는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라는 조건에서 기존 기술을 적용해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아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었다기보다 최적화한 것이에요. 물론 2.5마이크로미터(㎛)라는 아주 작은 픽셀 하나에 메모리, 드라이브 회로 등을 넣으면서 집적률을 높이는 노하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사피엔반도체의 또 다른 핵심 경쟁력을 꼽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희는 반도체 산업계에서 경험 있는 인력이 많아 ‘양산’에 자신 있습니다. 기술 창업에서는 개발만 되면 팔린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양산’을 가볍게 봐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어요. 제 경험을 비춰보면 개발에 10~20%의 에너지가 들고, 나머지 80% 이상이 양산에 들어갔습니다.
사피엔반도체에는 양산을 염두에 두고 개발했던 분이 많습니다. 실제 양산에 필요한 이익률(margin)을 다 따져서 개발을 진행하죠. 아주 조건이 좋은 실험실 환경에서 작동한다고 다 된 게 아닙니다. 여러 경우를 따져서 문제 없이 높은 수율(생산품 중 정상적으로 쓸 수 있는 비율)을 확보해야 해요. 수율을 잡지 못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서 아무 소용이 없어요. 아무리 좋은 기술도 상품이 될 수 없으니까요. 건축가가 100층짜리 건물 설계도를 내놓아도 시공사가 잘 못하면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사피엔반도체는 2018년 서울 송파구에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반도체 양산 분야 전문가를 영입했다. 사진은 당시 손발을 맞춘 사피엔반도체의 구성원(위)과 사무실의 모습(아래). | 사진: 사피엔반도체 제공
사피엔반도체의 성공은 계속 이어질까요?
사실 작년까지도 스마트 안경의 가능성을 잘 안 믿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생성형 AI’가 뜨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뀐 거예요. 그전에는 ‘이 기술이 되긴 되는데 언제 될지 모른다’고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제 그런 의심은 사라졌어요. 저희가 운이 좋았죠. 좋은 기술이 있더라도 너무 빨리 나오거나 너무 늦게 나오면 안 되는데, 시기적절하게 기술을 쓰게 된 거예요. 사피엔반도체의 핵심기술은 ‘마이크로 LED를 구동하는 반도체 설계 기술’이에요. 스마트 안경에 들어가는 요소 기술이니까, 스마트 안경과 함께 뜨는 거예요.
저희는 어떻게 보면 ‘먹이사슬’에서 가장 아래에 있고요. 저희 바로 위에 모듈을 만드는 LED 업체가 있습니다. 이 업체들이 OEM(주문자 위탁 생산)으로 빅테크 기업의 제품을 만들죠. 저희 고객인 LED 업체는 개발비를 주고 맞춤형 설계를 요구해요. 과업 하나당 50~100억 원의 매출이 발생합니다. 세계적으로 이런 일을 맡길 데가 그렇게 많지 않은 형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인력이 부족해서 들어오는 일을 다 못 받고 있어요. 시장의 수요는 아주 강해요.
앞으로는 자동차 쪽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나 군사용 고글(goggle), 마이크로 LED를 이용한 광대역 통신 등으로 확장할 분야도 많습니다. 올해도 20~30명의 개발자를 채용했고, 내년에도 그만큼의 개발자를 뽑을 계획입니다.
창업기업에겐 ‘코스닥 상장’이 아주 중요한 목표로 여겨지는데요. 사피엔반도체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합병’을 선택하셨더라고요. 이유가 있을까요?
주식시장에서 기업을 공개하고 공모에 나서려면 절차가 복잡해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영향도 엄청나게 받기 때문에, 잘못 기업공개(IPO)에 나섰다가 실패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 기업에 또 타격이 오겠죠. 저희는 항상 어떤 결정에서 위험 요소(risk)를 줄이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라 상장에서도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 합병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SPAC은 본 사업 없이 투자금만 모아서 코스닥에 먼저 상장한 회사인데, 최근에는 SPAC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상장하는 기업도 늘고 있어요.

2024년 2월 19일, 사피엔반도체가 코스닥 상장기업이 됐다. 기술특례상장이라 시장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을 고려해 SPAC 합병 방식을 선택했다. | 사진: 사피엔반도체 제공
기업 운영 계획을 4년 단위로 세우신다고요. 여기에도 어떤 지혜가 숨어 있을 것 같습니다.
사업 시작하면 2~3년 만에 결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업은 없거든요. 저희도 8년 만에 이만큼 왔고, 그동안 계속 투자를 받아왔어요. 그런데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고 돈에 쪼들리기 시작하면 잘못된 결정들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급해지니까요. 그러면 100% 실패하게 되죠. 대체로 2~3년 시도해 보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학생들에게 ‘4년의 법칙’을 종종 이야기합니다. 초·중·고등학교 12년을 삼등분하면 각각 4년이 되고, 대학교도 4년, 대학원 석박통합과정도 4년 정도 걸리죠. 예전에는 회사도 4년마다 사원에서 대리, 과장으로 승진시켰어요.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4년 주기로 열리고요. 저는 이 4년이라는 기간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봅니다. 최소 4년 정도는 준비해야 국제대회도 치르고, 배움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죠.
사피엔반도체는 4년마다의 마일스톤(milestone)을 정했어요. 큰 그림에 따른 로드맵에 맞춰서 모든 결정이 정해지고 추진 중이죠. 2~3년 만에 결론이 나거나 성과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4년은 기본이고, 8년 정도는 지나야 매출이 생깁니다. 후배 창업자들도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미리 8년 정도의 투자금 확보와 지출 계획을 세워두길 권합니다.
실제로 벤처캐피털이나 정부 지원도 창업 7년 이내로 자격을 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적어도 7년 정도는 준비한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기술에 대한 확신, 고객과 소통은 먼저 챙겨야 하겠지만요.

지난 9월 4일(목) UNIST에서 열린 산학융합포럼에 참석한 이명희 대표가 기업의 성장 사례를 나눴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후배들이 멋진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 사진: 이덕기
UNIST Pioneer 여러분은 어떤 꿈을 품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지금 이명희 대표의 꿈은 무엇인가요?
제 나이가 이제 60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데, 이즈음 되면 사회에 기여하고 싶잖아요. 저는 이렇게 사업을 해서 고용을 창출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게 좋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게 제 꿈이에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업을 하면서 전 세계에 뭔가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참 좋습니다. 세계무대를 향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니까요. 우리 직원들은 아직 젊은데 해외 빅테크 회사와 함께 일하면서 자부심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판을 열어줬다는 게 기쁩니다. 국가대표팀을 꾸리고 연습 게임을 하면서 실력을 키워가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런 연습을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배 창업가에게 조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장을 넓게 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업은 절대 혼자서는 못하니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또 조금 듣기 싫은 소리일 수도 있는데, 창업하면서 ‘양다리는 금지’입니다. 사업은 100% 에너지를 투자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CEO가 되어 기업에 매진하거나 CTO로 남아서 기술지원만 하거나 양자택일해야 합니다.
사업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해요.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쓰러지거든요. 성장하지 않고 정체하면 실패하는 거예요. 회사를 키워나가지 않으면 직원들이 먼저 알고 나가버립니다.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끝까지 생존해야 해요. 사피엔반도체는 ‘변화를 체질’로 만들어 성장하고 생존하려고 합니다. 사회가 바뀌고 모든 게 바뀌는데 어떻게 변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살아남으려면 변화해야 해요. 방식은 다르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 각자의 길을 찾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