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교환학생, 호주 여행자, UNIST Journal 기자, 기타 동아리의 보컬, 대통령 직속기관 청년위원회 2030 정책참여단(이하 2030 정책참여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면보고 공과대학생 대표, 월드프렌즈 IT봉사단….
강현주 UNIST 자연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 학생을 지난 4년 동안 수식한 말들이다. UNIST에서 보낸 대학생활이 그만큼 알찼다는 방증이다. 강현주 학생은 “UNIST 학부 과정동안 낯선 환경에 스스로를 놓은 작업을 했다”며 “그 경험들이 진짜 ‘나’를 찾게 해줬다”고 말했다.
여러 활동 중 강현주 학생이 꼽은 가장 뜻 깊은 경험은 ‘2030 정책참여단 1기’에 참가해 금상을 수상한 일이다. 청년들이 직접 현장을 취재해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이었는데, 강현주 학생은 청년 창업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이 창업에 관한 법률을 잘 모르고 있어 범법행위를 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하지 못하는 사례를 듣게 됐다.
강현주 학생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신문기사로 이공계 출신 정책가가 부족하다는 내용을 접했다”며 “그 때부터 이공계 출신 과학기술정책가라는 꿈이 생겼는데 2030 정책참여단 활동을 통해 구체적인 진로를 설계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현장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책에 반영하려면 많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현장에서 생기는 고민을 정책을 만드는 곳에 잘 전달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UNIST에 대해 강현주 학생은 ‘기회가 많은 학교’라고 표현했다. 자세히 살피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에서 대학원 과정도 지난 2월 UNIST 자연과학부에서 시작했다.
그는 “우선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며 “현장 경험들을 바탕으로 향후 과학기술 정책 분야에서 활약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했다.
다음은 강현주 학생과 일문일답이다. 이메일 인터뷰는 2015년 2월 학위수여식 이전에 이뤄졌음을 밝힌다.
Q1. UNIST에서 개인적으로 이룬 성장이라면?
A1. 대학생활 4년 동안 다양한 활동에 도전하며 스스로를 탐구하는 기회를 가졌다. 감사하게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헛되이 쓰지 않았다. 모든 활동은 도전이었고 시험이었으며, 지나고 난 뒤에는 ‘강현주’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영양분이 됐다.
특히 오래 전부터 ‘과학기술정책자’를 꿈꿨는데, 그 분야에서 잠깐이나마 활동하면서 진로 설정에도 도움을 받았다. 정책을 꾸리고 설계하는 일이 하고 싶은데, 그 일을 최종 목표로 삼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Q2. 과학기술정책전문가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가 있는지?
A2. 과학기술정책가라는 꿈은 고등학교 시절 읽은 신문기사 때문에 생겼다.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이공계열 출신은 드물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정책이나 관련법이 부족하다니 그 분야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30 정책참여단에서 활동한 경험은 이런 꿈에 확신을 줬다.
정책참여단은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야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배정받은 부분은 청년창업이었는데, 창업한 청년들을 직접 만나보니 관련법에 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범법행위도 적지 않았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법을 잘 몰라서 주저앉는 상황은 안타까웠다.
이 경험을 통해 올바른 정책을 제시하려면 지식과 경력 등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앞으로 진로를 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내용을 정책에 제대로 반영시킬 수 있는 중간 다리가 되고 싶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정책참여단 활동을 하면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면보고에서 공과대학생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게 뜻 깊었다. 국무에 직접 참여해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 실태와 동향을 계획하는 것을 보고 학업에 대한 자부심과 동기 부여, 인생 목표 설정 등에 도움 받았다.
Q3. 학업 이외에 가장 의미 있었던 활동은?
A3. 딱 하나만 고를 수가 없다. 학교 다니는 내내 낯선 환경에 스스로를 놓아두는 작업을 했는데, 모든 순간에서 배움을 얻었다.
우선 2학년 때는 처음으로 혼자 외국에 다녀왔다.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를 타는 것부터 현지에서 먹고 자는 모든 일을 스스로 했다. 현지인 집에서 묵기도 하면서 한 달 동안 아무도 모르는 곳에 다녀왔다. 무사히 돌아온 뒤에 ‘어디서든 혼자 설 수 있다’는 걸 느꼈다.
3학년 때는 터기 사반치(Sabanci)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6개월 동안 머물다 왔다. 정해진 시간 동안 터키라는 나라를 알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고, 그 덕분에 그들의 문화에 푹 빠졌다. 터키 현지인들은 영어가 아닌 터키어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동양인, 특히 한국인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어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외국에 나가서 산다는 도전은 제가 가진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4학년 여름방학 때 몽골에서 한 달간 IT봉사를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IT 교육이 중심이었는데,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몽골 교사를 대상으로 포토샵과 동영상 편집,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 교육 등을 진행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삶에 ‘나눔’이라는 화두가 생겼다.
Q4. 앞으로도 잊지 못할 ‘UNIST의 추억’을 꼽으라면?
A4. ‘피크’라는 기타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노래를 부는 역할을 담당했다. UNIST는 학구적인 분위기가 강한데 이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그것과는 조금 다른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가막못 근처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캠퍼스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12년부터 2년 동안 UNIST 학보사인 UNIST Journal에서 활동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수습기자부터 기자, 부장까지 역임하는 동안 다양한 교내․외 활동을 취재했다. 사람을 만나고 영어로 기사를 쓰면 일들이 모두 재미있었다. 학보사 활동은 제가 가진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Q5. 앞으로의 계획과 장래희망은?
A5. 4년 동안 장학금을 받는 큰 행운을 누렸다. 질 높은 교육을 받고 훌륭한 환경이 갖춰진 학교에서 성장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런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다. 어려운 나라나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으로 가서 지금까지 받았던 고마운 마음을 되갚고 싶다.
대학원에서는 최원영 교수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최 교수는 메탈과 유기물질을 연결해 구조물을 만드는 연구를 한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거나 오염물질을 감지하는 데 활용되는 소재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최 교수를 따라 새로운 구조를 가진 물질을 만들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연구를 하고 싶다.
Q6. UNIST는 본인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
A6. ‘기회를 많이 주는 학교’다. UNIST였기 때문에 얻은 기회가 많다. 그 점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하건 용감한 편이라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 기회를 잘 잡은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겁 없는 성격’ 덕분에 앞으로도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