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첫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UNISTAR가 나타났다. 주인공은 서지형 에너지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대학원생. 학부생 시절 실험실에서 받아든 ‘그래핀 합성법’을 다른 눈으로 바라본 꼼꼼함이 오늘의 결실을 가져왔다. 서지형 학생 덕분에 달라지게 될 ‘그래핀 레시피’를 들어봤다.
“실험실에서 그래핀 합성을 하게 됐어요. 장비 옆에 매뉴얼이 있어서 그대로 따라하면 됐죠. 그런데 합성 과정에서 냉각 속도(cooling rate)는 조절하지 않더라고요. 거기에 변화를 주면 어떨까 생각한 게 논문까지 오게 됐어요.”
서지형 학생은 그래핀 합성법으로 많이 쓰이는 화학기상증착(Chemical vapor deposition, CVD)에서 냉각속도 조절을 연구해 ‘케미스트리 오브 머티리얼스(Chemistry of Materials)’ 4월 27일자로 발표했다. 화학기상증착은 열이나 플라즈마를 이용해 박막의 화학물질을 만드는 방법이다. 그래핀은 메탄 가스와 수소 가스를 용기에 넣고 1000℃ 고온에서 반응시켜 얻는다. 합성된 그래핀을 꺼내 쓰려면 냉각이 필요한데, 이 부분은 합성단계 자체보다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구리를 촉매로 써서 그래핀을 합성하면 다중층 그래핀도 섞여 나와요. 탄소 한 층으로 이뤄진 고품질 그래핀을 많이 얻으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죠. 그러다 냉각속도에 눈이 갔어요. 온도에 따라 화학반응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냉각속도를 조절하면 변화가 있을 것 같았죠.”
지형 학생은 1000℃에서 상온까지 온도를 낮추던 조건을 바꿔봤다. 보통 급속 냉각(fast cooling)시키는데, 특정 구간은 저속 냉각(slow cooling)으로 조절한 것이다. 그 결과 일정한 경향성이 나타났다. 이 내용을 받아든 박혜성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지형 학생을 칭찬하며 연구를 이어가도록 지도했다. 당연하게 생각할 부분을 지나치지 않고 창의적으로 바라본 꼼꼼함을 높이 산 것이다.
박혜성 교수는 “지형 학생이 3학년 2학기부터 연구를 진행해 4학년 2학기에 논문 투고를 마쳤다”며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매사에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려는 창의적인 학생”이라고 전했다.
냉각속도에 새로운 통찰 제시하다
“작년 10월에 논문을 투고하고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쳤어요. 낮에는 수업하고, 밤에는 실험하느라 힘들기도 했죠. 그래도 편집자가 ‘냉각속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라고 평가해주니까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지형 학생은 그래핀 합성에 쓰이는 반응이 온도에 따라 활성화 정도가 다르다는 데 주목했다. 메탄이 부서져 탄소가 나오는 반응(CH₄ decomposition)은 900℃ 이상, 그래핀이 수소를 만나 사라지는 반응(H₂ ecthing)은 850℃ 이상에서 활발하다. 이런 특징을 이용해 온도별로 냉각속도를 다르게 조절한 것이다.
실험 조건은 1000℃에서 상온까지 급속냉각, 1000~900℃까지만 저속냉각, 1000~800℃까지만 저속냉각 3가지였다. 그 결과 첫 번째 조건에서 그래핀 품질이 가장 좋았다. 두 번째 조건에서 다중층 그래핀이 많았다. 이는 메탄에서 분해된 탄소가 그래핀 위에 덧붙기 때문이다. 세 번째 조건에서는 덧붙은 그래핀들이 수소와 반응하면서 사라지지만 품질은 첫 번째 조건보다 못했다.
지형 학생은 “냉각속도를 구간별로 조절하면 그래핀 합성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건 처음 보고된 것”이라며 “화학기상증착 방법으로 고품질 그래핀을 성장시키기 위한 이상적인 냉각속도도 제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자소자 매력에 빠져 화학공학도의 길로
어려서부터 장래희망으로 ‘과학자’라고 쓰던 지형 학생에게 ‘연구중심대학’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다른 종합대학교로도 갈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과학자들이 모인 곳이 끌렸다. 3학년 1학기에 들었던 박혜성 교수의 ‘전자소자’ 수업은 그 선택에 확신을 줬다. 전자소자가 구동하는 원리도, 그것을 이루는 물질도 너무 재미있었다.
“시험공부마저도 즐거워서 박혜성 교수님을 찾아뵀어요. 연구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흔쾌히 받아주셨죠. 여름방학부터 인턴 연구원이 됐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가 올해 대학원 첫 학기를 맞았습니다.”
박혜성 교수팀은 그래핀 등의 물질을 합성하고 차세대 태양전지를 개발하고 있다. 지형 학생이 배우고 싶었던 전자소자는 물론 물질합성까지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차근차근 성장해 ‘혁신적인 물질을 만들어내는 연구자’가 되길 꿈꾼다. 2차원 물질을 상용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물질합성 원리도 하나씩 밝혀내고 싶다.
그는 학부생에게 연구실을 열어주는 ‘연구인턴십 제도’를 UNIST의 장점으로 꼽았다. 학부생까지도 일일이 챙겨 랩미팅(lab meeting)을 진행하다 보니 남들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 실험하고 결과를 얻어내는 쾌감이 장난이 아니다.
“이제 1년차 대학원생이지만, 이대로 계속 연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연구가 정말 재밌어요. 과학자를 꿈꾸는 친구들이 있다면 주저 없이 UNIST를 권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대학교에서 저만의 연구를 해내는 것 정말 멋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