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늦가을 즈음이면 캠퍼스는 이런저런 행사들로 북적인다. UNIST 캠퍼스도 각종 동아리 공연과 파티, 체육대회 등으로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동아리 ‘개그의발견’과 ‘피치하이’ 공연, 응원제 라온누리, TEDxUNIST 애프터 파티, 제3회 토론대회, 기숙사자치회 연말파티 등 무려 11개의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은 MC ‘철구’다. 현재 휴학 중인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나타나 각종 행사의 진행을 맡고 있는 그는 누구일까.
“안녕하세요? MC 철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작년 12월 5일 오후 2시, 학생회관에 철구가 나타났다. 그가 무대에 설 때 착용하던 검정색 페도라 모자로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모자를 제외한다면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쓴 평범한 공대생이다. 하지만 쾌활하게 웃는 표정만큼은 남달랐다. 휴학 중인데도 불구하고 행사 진행을 맡아 재능기부 활동을 펼치는 철구, 그가 입을 열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진짜 제가 하고 싶은 걸 찾으려고 휴학했습니다. 일도 하고 책도 많이 읽었죠. 제가 판단한 저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가장 기분이 좋고 남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능력을 긍정적으로 쓸 방법을 고민하다가 캠퍼스에 힘을 줄 수 있는 ‘개그 공연’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철구는 2011년 UNIST에 입학해 디자인 및 인간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본명은 ‘박철현’이지만 사회를 볼 때는 주로 철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철구는 어려서부터 따라다니던 별명인데 이렇게 불릴 때 친구들과 거리감이 적었다”며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 밝은(哲) 기운을 주는 입(口)이 된다고 생각해도 좋겠다”고 말했다.
박철현 학생은 UNIST 개그 동아리 ‘개그의발견’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3년 창설된 이 동아리는 2년째 공연을 벌이며 이공계특성화대학 최초의 희극동아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처음에는 7명이 모인 오합지졸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15명의 회원이 제법 구색을 갖춘 희극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2013년 복학한 박철현 학생은 친구들과 동아리를 꾸리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첫 공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공연 사회를 보면서 재미도 느꼈다. 그 결과 또 한 차례 휴학을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개그를 탐구하기로 했다.
그는 “코미디를 제대로 배워서 동아리도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싶었다”며 “인생에 필요한 도전이라면 한 번쯤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휴학 후 박철현 학생은 개그맨 전유성 씨가 경북 청도에서 운영하는 극단 ‘코미디 시장’을 찾았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코미디를 배웠다. 치열하게 개그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진짜 개그맨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알게 됐다.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극단 사람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공연하는지도 봤고,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전유성 선생님도 존경스러웠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극단 생활을 통해 코미디의 기본을 배운 그는 울산으로 돌아와 울산시민극단에서 연기를 배웠다. 희극 또한 연극의 일종이기 때문에 연기를 알아야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 ‘개그의발견’은 한층 전문적인 동아리가 됐고, MC 철구를 부르는 곳도 많아졌다.
이런 일상의 변화를 겪으며 박철현 학생의 꿈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UNIST에 입학하기 전까지 늘 ‘과학자’를 꿈꿨던 그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과학기술과 개그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창의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과학에서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예측하면서 목표를 찾아가듯 개그도 아이디어를 내고 사람들이 웃을지 예상하는 가운데 창의력이 더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나의 프로젝트가 길게는 몇 십 년에서 짧게는 몇 개월까지 이어지는 과학 연구보다 단기간에 결과물 낼 수 있는 작업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쇼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UNIST에 입학한 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입니다. 만약 다른 학교로 갔다면 이렇게 자유롭게 스스로에 대해 고민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다양한 전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열린 제도가 갖춰졌고,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위험하지 않고요.”
훌륭한 공학자가 되고 싶어 UNIST에 입학한 박철현 학생은 지금 멋진 MC를 꿈꾸고 있다. 우주공학자에서 의공학자, 광고기획자, MC 등 몇 번이나 꿈이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건 도전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박철현 학생은 인터뷰 말미에 UNIST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학비 걱정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걸 꿈꿀 수 있게 해준 학교라는 점이 자신을 한껏 성장시켰다고 믿기 때문이다. 훗날 멋지게 성공해 UNIST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을 안고 오늘도 철구의 꿈 찾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