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주로 다루는 물질 구조를 ‘망간(Mn)’으로 만들어봤습니다. 망간을 중심으로 다른 원소를 조합한 거죠. 이렇게 뭉쳤더니 지금까지 문제였던 부분이 해결됐습니다. 우연한 발견이 큰 성과로 이어진 겁니다.”
지난해 12월 말, 김건태 교수팀의 논문이 네이처 머티리얼스(Nature Materials)에 실렸다. 제1저자는 인도 출신 시바프라카시 생고단(Sivaprakash Sengodan)과 최시혁 박사과정 연구원이다. 이들을 만나 연구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었다.
김건태 교수팀은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lid Oxide Fuel Cell, SOFC)의 공기극에 ‘이중층 페로브스카이트(double perovskite)’를 활용한 성과를 많이 냈다. SOFC는 연료극과 전해질, 공기극으로 이뤄지는데, 공기극 부분에 이중층 페로브스카이트를 써서 성능을 높여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공기극이 아닌 연료극에 이중충 페로브스카이트를 활용해 획기적인 결과를 얻었다. 천연가스나 메탄 같은 탄화수소를 직접 연료로 쓸 수 있는 연료전지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 SOFC의 연료극은 촉매 활성이 좋은 세라믹스와 금속의 합금 소재가 쓰였는데, 이런 재료에는 한계가 있다. 탄화수소가 완전히 산화되지 못해 탄소가 연료극 표면에 쌓이거나 황 불순물 때문에 연료극이 상하기 때문이다.
최시혁 연구원은 “연료극의 탄소 침적이나 황 피독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연료극에 이중층 페로브스카이트를 써보자는 건 김 교수의 아이디어였다”며 “탄화수소를 연료로 사용해도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이중층 페로브스카이트를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중층 페로브스카이트는 페로브스카이트와 닮은 금속산화물의 결정구조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정팔면체 구조에 금속이온과 이를 둘러싼 산소이온으로 이뤄지는데, 이중층 페로브스카이트는 정팔면체 가운데 다른 원소가 한 줄 더 들어가는 팔면체 구조다.
시바프라카시 연구원은 “이전에 참여했던 연구에서 망간을 중간에 두는 페로브스카이트가 전도성이 좋고 안정성도 높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 점에서 힌트를 얻어 망간을 활용한 이중층 페로브스카이트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새로 만든 이중층 페로브스카이트를 연료극에 활용한 전극소재는 700℃에서 프로판을 연료로 사용할 때 탄소 침적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또 500시간 이상 작동시켜도 성능이 일정하게 유지됐다. 최 연구원은 “탄화수소를 직접 사용하는 연료전지를 만들 수 있다면 도시가스 배관 등을 그대로 사용해 집집마다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고 연구의 전망을 밝혔다.
“세계 수준의 시설 갖춘 UNIST서 연구해서 행복했다”
두 사람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UNIST를 떠나게 된다. 최 연구원은 1월 중순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며, 시바프라카쉬 연구원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에 박사 후 연구원으로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최 연구원은 지난 5년간 연구했던 UNIST에 대해 “전 세계에서 가장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표현했다.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던 미국 조지아텍과 노스웨스턴대 등과 비교해도 UNIST가 훨씬 나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또 “학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해 화학공학 분야는 새로 공부해야 했지만 연료전지를 만드는 공정 부분에서는 오히려 이해가 빨랐다”며 “다른 분야를 전공해도 어우러져 서로 발전시켜갈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박사 후 연구원으로도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분야를 연구할 계획이다. 연료전지는 싸고 공간도 적게 차지하며 친환경적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상용화가 더딘 편이다. 최 연구원은 “연료전지 분야에서 영향력이 있는 연구자로 성장해 연료전지 상용화에 기여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시바프라카시 연구원 역시 연구 환경을 보고 UNIST를 선택했다. 그는 “다른 나라의 대학교도 지원했지만 UNIST의 장학제도나 시설이 가장 매력적이었다”며 “5년간 좋은 시설에서 좋은 사람들과 연구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