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공정 기술 개발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 나노 공정은 고성능 반도체 칩 개발 등 초정밀 산업을 위한 핵심기술이지만, 초미세 구조 공정 단위가 0에 가까워질수록 기술 개발 속도 또한 한계치에 수렴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초미세 구조로 줄여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면, 아예 0부터 구조를 쌓아나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UNIST(총장 이용훈) 물리학과의 김대식 특훈교수와 그 연구팀은 이 같은 발상에서 착안해 0 나노미터(nm, 10-9m)부터 시작하는 초미세 틈 구조(zero gap) 제작 공정을 개발했다. 이 ‘제로 갭 구조’를 잘 휘어지는 기판에 만들면 안테나 등에 쓸 수 있는 초고효율 광학 능동 소자로 작동한다.
연구진이 개발한 제로 갭 구조는 얇은 금속 층으로 이뤄져있다. 기판위에 두 금속 층을 서로 인접하게 쌓을(증착) 경우 경계면에서만 초미세 균열이 생기는 원리를 이용했다. 같은 금속 물질을 서로 다른 조건에서 기판 위에 쌓았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기판을 휘게 해 당기는 힘(장력)을 가하면 0 나노미터에 가까운 틈새가 생기지만 장력을 제거하면 두 금속 층이 연결된 상태가 된다.
이처럼 열고 닫을 수 있는 제로 갭(틈) 구조는 전자기파(빛) 투과도가 1에 가까운 ‘on’과 10-5 정도인 ‘off’ 상태를 오가는 능동 광학 소자로 쓸 수 있다. 틈이 열려 있을 땐 축전 효과에 의해 틈 내부에 전기장이 강하게 증폭돼 전자기파가 높은 비율로 투과하지만, 틈이 일부만 닫히더라도 축전 기능이 사라져 투과도가 급격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스위칭의 효율을 나타내는 on/off 비율은 무려 105에 달하며, on/off 전환을 무려 10,000번 이상 반복한 이후에도 성능을 그대로 유지했다.
김대식 특훈교수는 “틈 구조를 이용한 광학소자는 확실한 ‘단락’(on-off)이 존재하는 전기 회로 개념이 적용돼 스위칭 효율이 높다”며 “복잡한 나노 공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소자로 즉각 활용하기에도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안테나 구성 물질을 바꿔 광학신호를 변조하는 경우 물질의 유전율(3~4)과 공기의 유전율(1) 차이가 크지 않아 광학 소자의 효율이 낮았다.
공동연구원인 강원대학교 물리학과 정지윤 교수는 “마이크로파 및 테라헤르츠 파뿐만 아니라 중·근적외선 영역에서도 매우 효율적인 전자기파 단락이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5G 및 6G 통신에 활용되는 마이크로파와 테라헤르츠파 제어를 위한 차세대 능동 소자로 활용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편, 0 나노미터 광학소자 제작 기술은 반도체 소자 제작에도 쓰일 수 있다. 금속 대신 쉽게 제거(식각) 가능한 고분자 물질 등으로 초미세 틈 구조를 만들고 이 틈 사이에 반도체 물질을 증착하면 1 나노미터 미만의 폭을 가진 소자 제작이 가능하다. 삼성, 인텔, TSMC 등의 반도체 기업의 소자 집적화 기술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차세대 기술로 응용 가능하다.
이번 연구는 광학 소자 분야의 세계적인 저널 ‘어드밴스드 옵티컬 머티리얼즈’ (Advanced Optical Materials)에 3월 24일자로 공개됐다. 한국연구재단 (NRF)의 지원을 받아 UNIST와 서울대, 강원대학교의 공동 연구로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