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충전해 멀리 달리는 전기차 ‘대용량 배터리’에 꼭 필요한 ‘양극 소재’가 개발됐다. 2019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존 구디너프 박사가 1985년 제안한 형태에서 큰 진전이 없이 쓰이던 양극 소재의 개선에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UNIST(총장 이용훈)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이현욱 교수팀은 영국 옥스퍼드대 마우로 파스타(Mauro Pasta) 교수팀과 공동으로 ‘고용량 리튬 이온 배터리용 양극 소재(FeF₂ nanorod)’를 합성하고, 이 물질의 성능 향상 원리를 규명했다. 투과전자현미경(TEM)을 이용해 충전과 방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결과, 양극 소재 표면에 생기는 얇은 막이 성능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드러났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가며 전기 에너지를 충전하고 방전한다. 보통 양극은 층층이 쌓인 형태(층상구조)로 만들어 리튬을 저장하도록 설계하는데(존 구디너프의 기술), 이 경우 에너지 용량은 제한된다. 층상구조를 이루는 물질 자체의 부피 때문에 리튬이 들어갈 공간을 늘리기 어려운 것이다.
리튬을 양극 물질과 화학적으로 결합하면 에너지 용량을 키울 수는 있지만, 배터리 수명이 감소한다는 단점이 있다. 리튬과 양극 물질이 결합할 때(방전)보다 분리될 때(충전) 들어가는 에너지가 훨씬 커 충·방전을 반복하면 전극 구조가 불안정해지고 수명도 짧아지는 것이다.
공동연구팀은 양극 소재의 ‘제조 공정을 개선’해, 리튬과 양극 물질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도 충·방전 시 필요한 에너지 차이를 줄인 ‘이플루오르화철(FeF₂) 나노 막대 양극 소재’를 합성했다. 콜로이드 합성법(colloidal synthesis)을 이용해, 20나노미터(㎚, 1㎚는 10억 분의 1m) 수준인 단결정(single crystal) 양극 소재를 만든 것이다. 이 소재는 리튬을 더 많이 저장하면서도 수명은 길다.
이현욱 교수팀은 새로운 양극 소재의 충·방전 과정을 ‘실시간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In-situ TEM)’으로 분석해 성능 향상의 비밀을 찾아냈다. 양극 소재의 표면에 철(Fe)과 리튬플로라이드(LiF)로 이뤄진 얇은 이중층이 만들어져 충·방전 동안 양극 소재를 보호해주는 현상이 포착된 것이다.
위태웅 UNIST 에너지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방전 반응 초기에 나노 막대 표면에 형성된 불규칙한 막이 점차 견고한 철/리튬플로라이드(Fe/LiF) 이중층으로 바뀐다”며 “이 층은 충·방전 반응 동안 나노 막대가 가진 불안정한 특성을 보완해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성능 향상이 어렵다고 알려진 화학결합(conversion) 기반 양극 소재의 작동을 이해하고 개선하는 연구로 평가된다. 이현욱 교수는 “차세대 고용량 양극 소재는 도전적인 과제라 음극 소재에 비해 연구가 미흡한 편”이라면서도 “실시간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으로 고용량 양극 소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만큼, 앞으로는 양극 소재에 관한 연구도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재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인 ‘네이처 머티리얼즈(Nature Materials)에 2월 24일자로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