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가 던진 야구공은 구종에 따른 다른 궤적을 갖는다. 구종 별로 공기의 흐름과 상호 작용하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분자도 레이저와 상호 작용하게 되면 각각의 ‘회전 상태’에 따라 다른 운동 궤적을 가지는 것이 밝혀졌다.
UNIST(총장 이용훈) 자연과학부의 조범석 교수팀은 레이저장(비공명 광학정상파)의 영향 아래서 비극성 분자(전하 분포가 균일하여 극성을 띠지 않는 분자)의 ‘회전 양자 상태’가 다르면 운동궤적도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야구공 구종에 따라 공기와 상호 작용하는 정도가 다르듯이 분자도 ‘회전 양자 상태’에 따라 ‘분자가 정렬되는 정도’가 달라지면서 궤적이 변한다. 이를 역으로 이용하면 양자 상태별로 분자를 분리하는 기술 등에 응용할 수 있다.
분자는 레이저장이 없으면 각각의 ‘회전 양자 상태’에 따라 자유롭게 회전한다. 그런데 자유롭게 회전하던 분자들이 레이저장(laser field)과 상호작용하면 변화가 생긴다. 레이저장이 존재하면 비극성 분자도 유도된 극성을 갖게 되고, 그 정도는 회전 양자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유도된 극성을 가지는 분자는 특정한 방향(레이저장의 편광 방향)으로 정렬되며, 동시에 레이저장과 상호 작용하여 분자의 병진 운동(앞으로 이동하는 운동)의 변화가 생긴다.
이처럼, 외부의 전기적 힘에 의해 유도되는 극성의 정도를 ‘편극률’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편극률은 회전 양자 상태뿐 아니라 분자 정렬 정도와도 연관되고, 정렬 정도는 레이저장의 세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기존에 보고된 실험 결과들의 해석에서 ‘회전 양자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분자 정렬’이 분자의 운동궤적 변화(분산)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되었다.
연구팀은 ‘회전양자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분자정렬’ 효과를 고려 분자의 운동궤적 변화를 정확히 설명했다. 회전온도가 낮은 이황화탄소(Carbon disulfide) 기체 분자와 마주 보며 진행하는 동일한 레이저 빔 두 개로 만들어진 광학 정상파를 이용해 산란실험을 하고, 회전 양자 상태에 따라 변하는 분자 정렬 효과를 고려한 분자궤적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험 결과를 해석했다. 그 결과, ‘회전 양자 상태별 분자 정렬 효과’를 고려했을 때 가로 방향으로의 분자의 속도 변화를 잘 설명할 수 있었다.
회전이 거의 없는 야구 구종인 너클볼은 공기와의 상호작용이 강해 공의 궤적을 예측하기 힘든데, 마찬 가지로 회전온도가 낮은 이황화탄소 또한 분자정렬 효과가 커 운동궤적을 예측하기 힘들다. 공기의 흐름은 자연의 섭리라 예측하기 힘들지만, 분자가 정렬되는 정도는 계산 할 수 있기 때문에 분자정렬효과를 고려한다면 분자의 운동궤도를 정확히 예측 할 수 있다.
공동 제1저자인 김이영 UNIST 물리학과 석ㆍ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2015년 발표한 피지컬 리뷰 레터스(PRL) 논문에서는 ‘회전 양자 상태별로 달라지는 편극률’만으로 설명할 수 없던 부분이 있었다”며 “이번에는 ‘레이저장의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분자 정렬 효과’까지 함께 고려해 더욱 정확히 편극률을 계산함으로써 분자 분산 실험결과를 성공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범석 교수는 “레이저장에 의해 정렬된 분자의 분산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분자 운동 제어뿐만 아니라, 비극성 분자들을 회전 상태에 따라 분리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의 초석이 될 수 있다”며 “이는 서로 다른 양자 상태에 분포하는 이성질체를 분리해 각각의 반응동역학을 연구하는 등의 후속 첨단 연구에 토대가 될 수 있어 응용 범위가 매우 넓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저명한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4월 3일자로 게재됐다. 연구 수행은 UNIST 기초과학연구소 연구비지원사업과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이공학개인기초연구지원사업, 글로벌박사양성프로그램(GPF)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