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간 실험동물로 각광 받아온 ‘아프리카발톱개구리(Xenopus laevis)’의 유전체(genome)가 해독됐다. 인간 유전자의 기능을 찾아내거나, 암 등의 인간 질병을 연구하는 새로운 모델로 개구리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권태준 생명과학부 교수가 제1저자로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유전체와 4만여 개의 유전자를 염색체 수준으로 규명하고, 이를 20일(목) ‘네이처(Nature)’ 표지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과 일본, 한국을 비롯한 7개국에서 60명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2009년부터 7년간 진행됐다. (권태준 교수 인터뷰 바로가기)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체외수정으로 한 번에 지름 1㎜ 수준의 큰 알을 수백 개씩 얻을 수 있다. 유전자 발현 조절도 쉬워 인간을 포함한 많은 척추동물의 발생 과정에서 중요한 유전자를 연구하는 발생학, 세포생물학, 생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널리 사용됐다.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존 고든 경(Sir John Gordon)이 체세포 핵치환 실험을 통해 ‘어른 세포가 다시 배아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보여준 실험에도 아프리카발톱개구리가 사용됐다.
하지만 이 개구리의 유전체 해독은 다른 동물보다 느리게 진행됐다. 염색체 그룹이 4개(4배체)여서 분석이 까다로웠던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은 부모에게 하나씩 염색체 그룹을 물려받아 2개의 염색체 그룹(2배체)을 가진다. 이에 비해 부모에게 2개씩 염색체 그룹을 받는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분석은 훨씬 복잡하다.
권태준 교수는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4개 유전체 그룹으로 이뤄진 독특한 동물이라 유전체 정보가 제한적으로만 알려져 있었다”며 “이번 유전체 해독으로 생물학 전반에 쓰일 효과적인 실험동물 모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지난 2010년 해독된 서양발톱개구리(Xenopus tropicalis)와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유전체 비교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서양발톱개구리는 인간 유전체처럼 부모에게 2개 염색체 그룹을 물려받는다. 두 종의 비교를 통해 물려받는 염색체 그룹 숫자(배체수) 변화에 따른 영향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4개 유전체 그룹에서 각각 9개의 염색체를 가진다. 연구진은 이들 염색체의 DNA 반복서열을 분석해 크기가 큰 L염색체 9개와 크기가 작은 S염색체 9개가 각각 다른 종에서 유래했다는 걸 밝혀냈다. 또 염색체 속에 흔적만 남는 유사유전자(pseudogene)를 분석해 서양발톱개구리와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조상이 약 4800만 년 전에 분화했고, 2배체를 이루던 두 종의 유전체가 1700만 년 전에 합쳐져 현재의 아프리카발톱개구리가 탄생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권태준 교수는 “서로 다른 종에서 염색체 그룹이 합쳐지면 모든 유전자가 살아남을지 사라질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며 “해독된 유전체를 살펴본 결과, 아프리카발톱개구리에서는 신호전달과 대사, 구조 형성에 작용하는 유전자는 두 종의 것이 모두 유지됐고, 면역체계나 DNA 손상복구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한쪽만 살아남은 게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식물에서만 볼 수 있었던 4배체 유전체를 동물에서 최초로 확인하고, 진화적으로 유전자 변화를 살핀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진화를 통해 새로운 유전자가 생성되는 과정과 같은 기초 연구뿐 아니라 암이나 선천성 기형처럼 배체수 변화가 흔히 나타나는 질병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UNIST 신임교원 정착지원과제 등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UNIST는 아프리카발톱개구리와 서양발톱개구리 두 종을 모두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기관이다. 권태준 교수는 이 모델동물을 쥐나 인간 세포주 등 다양한 시스템들과 같이 결합한 인간 질병 관련 시스템 생물학 연구에, 박태주 교수는 발생 과정의 얼굴의 형성 유전자를 찾는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아프리카발톱개구리 유전체 해독 관련 YTN 보도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