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는 빨리 충전되고 많은 에너지를 담아야 한다. 여기에 적합한 급속 충전용 고용량 배터리를 만들 기술이 개발됐다. 기존 흑연 음극소재의 단점을 보완한 혁신적인 원천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조재필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팀은 기존 흑연 음극소재보다 빨리 충전될 뿐 아니라 더 오래 쓸 수 있는 차세대 음극소재를 개발했다. 흑연에 리튬이온이 빠르게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많이 만들고, 그 위에 실리콘을 나노 두께로 얇게 코팅한 것이 핵심이다. 이 기술을 향후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에 적용하면 충전 시간을 단축시키고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전기자동차가 주목받으면서 동력원인 이차전지의 용량을 키우고 충전시간을 줄이는 게 중요해졌다. 하지만 기존 흑연 음극소재는 리튬이온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 자체가 적고, 고속으로 충전하면 음극소재 표면에 리튬 금속이 석출돼 전지 성능과 안전성을 떨어뜨린다.
이런 흑연 음극소재의 단점을 극복할 물질로 흑연보다 10배 이상 용량이 큰 실리콘 소재가 차세대 음극 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 소재는 전기 전도도가 낮고, 충전과 방전 시 부피가 급격히 변하는 문제가 있다. 이런 이유로 고용량과 고속 충전을 동시에 구현하는 리튬이온전지를 만드는 기술을 현재까지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었다.
조재필 교수팀은 기존 음극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구조를 가진 흑연/실리콘 복합체를 합성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 방법으로 합성한 ‘가장자리 활성화 흑연/실리콘 복합체’는 상용화된 전극 조건에서 1.5배 빨리 충전됐고, 용량도 50% 정도 늘었다.
이번 연구의 주역인 김남형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 대학원생은 “이 기술의 핵심은 흑연에 리튬이온이 빠르게 드나들 수 있는 고속도로를 만들어주는 ‘니켈 촉매 환원법’과 안정적으로 용량을 높여주는 ‘실리콘 나노 코팅’이다”며 “새로운 물질은 기존 흑연과 실리콘이 갖는 문제점을 동시에 해결해 차세대 고용량 음극소재로 적용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니켈은 탄소와 수소를 반응시키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점을 이용해 흑연 음극소재의 가장자리에 니켈을 붙이고 수소와 반응시켰다. 그 결과 흑연 가장자리에 있는 탄소가 메탄(CH<sub>4</sub>) 가스로 변했다. 이런 반응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 흑연 가장자리에 구멍이 생기면서 리튬이온이 쉽게 드나드는 길이 열린다. 이런 통로가 많아지면서 결과적으로 전지를 빨리 충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진은 또 가장자리에 구멍이 생긴 흑연에 실리콘을 얇게 코팅해 기존 흑연 음극소재보다 용량을 늘리는 구조를 만들었다. 흑연의 높은 전도성과 실리콘의 고용량 특징을 모두 살린 것이다.
조재필 교수는 “실리콘 나노 코팅 원천기술로 머리카락의 만 분의 일에 가까운 두께(20㎚ 이하)의 실리콘을 흑연 표면 위에 고르게 코팅해 고성능 흑연/실리콘 복합체를 구현했다”며 “전체 공정이 비교적 간단하고 저렴해 대량생산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연구는 전기자동차나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에너지 밀도가 크고 출력이 높은 배터리에 쓰일 음극소재를 만드는 데 성공적으로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10월 9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연구 수행은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