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의 용량과 충전속도를 높일 소재로 ‘실리콘’이 꼽힌다. 실리콘 용량이 기존 음극 소재인 흑연보다 10배 이상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리콘의 전기 전도도가 낮다는 것인데, 이를 ‘1% 도핑(Doping)’으로 해결해 눈길을 끌고 있다.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이준희 교수팀과 POSTECH 화학과의 박수진 교수팀은 ‘저온에서 황이 도핑된 실리콘을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 이 물질을 원자 단위에서 시뮬레이션해 ‘반금속 성질’을 가지는 걸 확인했다. 반금속은 비금속과 금속의 중간 성질을 가지는 물질로 비금속보다 전기 전도도가 높다. 비금속(반도체)인 실리콘에 황을 도핑함으로써 전기 전도도를 높이게 된 것이다.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음극 소재로는 전기 전도도가 높은 흑연이 쓰인다. 그런데 흑연은 이론적 용량 한계가 있어 대체 소재 개발이 진행 중이다. 실리콘이 중요한 후보지만 전기 전도도가 낮고, 충․방전 시 부피 변화가 커서 잘 깨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박수진-이준희 교수팀은 이런 실리콘의 단점을 해결하는 ‘1% 도핑법’을 개발했다. 저온에서 대량의 실리콘 입자에 황을 도핑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이 방식으로 합성된 ‘반금속 실리콘’은 탄소 없이도 전기 전도도가 향상돼 고속충전이 가능했다. 기존에는 실리콘의 전도도를 개선하기 위해 탄소를 섞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공동 제1저자인 류재건 POSTECH 박사 후 연구원은 “실리콘에 황 같은 칼코겐 원소가 도핑되면 부도체-금속 전이가 일어나 금속 성질을 가지며, 반도체 분야에서는 이온 주입법을 이용해 칼코겐 원소를 실리콘 기판에 도핑함으로써 광전자적 특성을 개선하고 있다”며 “기존 공정은 복잡하고 비싸며 불안정성이 높아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았는데, 이번 연구로 손쉽게 반금속 실리콘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우선 금속할로젠화물 촉매로 이산화규소(SiO₂, silica)와 마그네슘 설페이트(MgSO₄, Magnesium sulfate)를 환원시켜서 원자 단위의 ‘실리콘/황 화합물(Seed)’를 만들었다. 이 물질들이 무작위로 뒤섞이면서 재결정화 과정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황이 균일하게 도핑된 구조의 실리콘 입자가 합성된다.
류재건 박사는 “반응 시작부터 황을 도입하는 방식을 써서 실리콘 입자에 균일하게 황을 도핑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며 “이 방식으로 합성된 반금속 실리콘은 전기 전도도가 50배 이상 향상돼 고속충전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기술로 만든 반금속 실리콘은 내부에 황 사슬도 길게 도핑돼 리튬 이온의 확산속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실리콘과 황 원자, 또 황 사슬이 치환되면서 전기 전도도와 리튬 이온 확산속도를 모두 높이는 것이다. 이는 고속충전이 가능한 고에너지 배터리 개발에 이상적인 물리적 성질로 평가된다.
공동 제1저자인 서지희 UNIST 석사과정 연구원은 “실리콘 구조를 전혀 변형하지 않고 도핑할 수 있는 차별성을 가진다”며 “상용화된 리튬 이온 배터리 평가 조건에서 검증한 결과, 10분만 충전해도 흑연의 4배 이상 용량을 유지했다”고 전했다.
이준희 UNIST 교수는 “반금속 실리콘 소재는 탄소의 도움 없이도 빠르게 충전되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음극 소재의 특성을 확보한 최초의 기술”이라며 “단 1%의 도핑으로 실리콘 전극이 가진 거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했다”라고 강조했다. 박수진 POTECH 교수는 “이 기술은 배터리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광전자 응용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에너지 소재 산업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5월 28일(화)자로 게재됐다. 연구 수행은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 논문명: Infinitesimal Sulfur Fusion Yields Quasi-Metallic Bulk Silicon for Stable and Fast Energy Stor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