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 발전 속에서 디자이너와 기술의 충돌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응용해야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경호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가 세계적 규모의 미디어 아트 전시, ‘2019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International Symposium on Electronic Arts, ISEA)’에 작품을 출품하고, 논문을 발표한다.
ISEA는 1988년부터 이어져 온 국제 미디어아트 축제로 지난 30년 간 17개국에서 개최됐으며, 매년 1천명 이상의 예술가,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올해 ISEA는 ‘룩스 에테르나(Lux Aeterna, 영원한 빛)’을 주제로 6월 22일(토)부터 28일(금)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최된다. 올해는 59개국에서 접수된 1천 200여건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경호 교수는 여기에 2개 작품을 선보인다. 조울증 환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제작된 인터랙티브 댄스 퍼포먼스 ‘Misplaced Euphoria’와 인상주의 화가의 붓터치를 모사해 컴퓨터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다룬 ‘Computational Impressionism’다.
두 작품은 이머징 미디어 아트(Emerging Media Art)의 주목할 만한 사례로 참가했으며,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관객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UNIST Newscenter는 새로운 미디어 아트를 향한 도전에 나선 이경호 교수를 만나 전시와 작품, 그리고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래는 이경호 교수와의 일문일답
Q1. 이제 막 부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참여는 부임 이전부터 준비하셨던 건가요?
저는 올해 5월 20일 UNIST에 왔습니다. 사실 ISEA는 UNIST에 오기 전부터 꾸준히 참여해왔고 이번이 세 번째 참가입니다. 마침 한국에서 새로 자리를 잡은 시점에 광주에서 열리는 ISEA에 참가하게 되어 기쁩니다. 특히 올해는 더 큰 규모로 개최되는 행사여서 미디어 아트 분야를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Q2. 출품한 작품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시에는 총 두 작품이 선보입니다. 첫 번째는 ‘Misplaced Euphoria’라는 제목의 인터랙티브 댄스 퍼포먼스인데요, 이 작품은 조울증 환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기획된 작품으로, 현대무용을 전공한 학생과 협업해 제작했습니다. 조울증(Bipolar Disorder)은 미국 10대들의 주요한 자살원인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심각한 문제지만, 보통 사람들은 가벼운 감정기복 정도로 치부해 쉽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저는 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사람들이 조울증에 대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실제 환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각 감정 상태에 대한 서술, 묘사를 수집했고, 이를 데이터로 축적해 시각화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같이 작업한 현대무용 전공 학생은 춤을 통해 감정의 변화를 표현했고, 저는 머신러닝을 활용하여 이 같은 춤사위 속에 표현된 감정의 변화를 분석해 새로운 작품을 만든 것이죠. 이러한 작업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궁극적으로는 인식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 작품은 ‘Computational Impressionism’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인상주의 화가의 화풍을 익힌 컴퓨터가 자신만의 붓터치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다룬 작업입니다. 영상을 보시면 컴퓨터가 주어진 그림을 바탕으로 인상주의 형식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초기에 인상주의 화가들의 화풍을 데이터화해서 컴퓨터가 과거의 그림을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를테면 반 고흐의 작품들을 분석해서 작품에 드러난 붓터치의 패턴을 추출하고, 학습시켜 컴퓨터가 그 느낌을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죠. 이 작업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미술의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붓터치를 학습한 컴퓨터는 과거의 그림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 수 있고, 나아가 어떤 화가가 계속해서 작업을 했을 때 그려냈을 ‘미래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만일 계속해서 기술이 성숙했을 때, 인간보다 뛰어난 컴퓨터가 창의적 예술을 창조한다면 그 시대의 미학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할까요?
물론 아직 컴퓨터가 인간의 창의성과 동등하거나 이를 뛰어넘는 순간은 오지 않았고, 빠른 시일 내에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수반되는 예술, 문화 권역과의 충돌, 그리고 이에 따른 의미의 변화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Q3.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게 되셨나요?
저는 학부시절 산업디자인과 정보문화학을 전공하고, 디자인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다양한 제품디자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학적 지식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느껴졌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보과학(Informatics)과 컴퓨터공학에 관심을 갖고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미디어 아트라는 분야는 생각보다 오래됐습니다. 백남준 선생님이 70년대에 이미 비디오아트를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느와르처럼 다채롭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록처럼 격렬하게,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만들수 있을 것이라 하시면서 본격적인 작품들을 내셨고, 관련 분야는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습니다. 최근의 미디어 아트는 ‘이머징 미디어 아트’라는 말로 구분되는데요. 이는 현대적 기술이 결합된 전혀 새로운 미디어 아트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개념입니다. 저는 이 이머징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예술은 기술과 공학과의 연계와 접목을 통해 변화해왔습니다. 저는 디자인 분야와 공학을 모두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예술의 흐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 머신러닝, 딥러닝 등의 기술이 예술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 살펴보고 이를 반성적,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죠.
Q4. 기술과 디자인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가 연구하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응용해야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가려지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최신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이러한 기술들은 디자인에 점점 더 많이 반영됩니다. 저는 이렇게 첨단 기술이 확대될 때,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반성적 사고와 비판적 관점을 갖고 디자이너의 창조적인 역할을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 경험(UX)에 근거한 디자인에 있어 이러한 역할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됩니다. 한 메신저는 인공지능의 발달에 힘입어 메시지 작성에 문구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상대방의 메시지를 수신하면 여기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추천해주는 식이었죠. 개발자들은 매우 편리한 서비스라고 생각했지만 고객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고객들은 메시지를 추천받는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두려움을 느꼈고, 개인정보를 침해당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기술발전과 디자인의 관계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디자이너의 역할은 이를 계속해서 살피고 분석할 때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디자인과 공학의 융합을 통해 창의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UNIST에서 앞으로 많은 연구를 함께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