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 수준인 미세한 구멍(나노 포어)으로 DNA 같은 생체 분자를 분석하는 기술이 크게 발전할 전망이다. 탄소 원자가 원기둥 모양을 이루는 물질인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정교한 나노포어를 손쉽게 만드는 기법 덕분이다.
UNIST(총장 정무영)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이창영 교수팀은 ‘탄소나노튜브의 내부 채널을 이용한 나노포어(nanopore) 분석법’으로 이온 하나를 탐지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얇은 플라스틱에 탄소나노튜브 구멍이 고르게 박힌 막을 제작해 활용했는데, 탄소나노튜브 지름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분자와 나노입자를 탐지할 수 있어 앞으로도 응용 분야가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노포어는 수 나노미터(㎚, 1㎚는 10억 분의 1m) 크기의 미세한 구멍을 뜻한다. 이 구멍이 가득한 얇은 막(멤브레인)을 만들고, 여기에 분자를 통과시키면서 전기를 흘리면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분자가 통과하면서 구멍 크기가 줄어드는 ‘막힘 현상’이 나타나 전기신호가 달라지는데, 이를 분석하면 분자의 크기와 종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기존에도 이런 나노포어 기반 탐지 기술은 있었지만 나노포어로 이뤄진 박막, 즉 멤브레인(membrane)을 양산하기 어려워 널리 쓰이지 못했다. 멤브레인을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려 생산성이 낮았고, 각 멤브레인에 똑같은 나노포어를 구현하는 재현성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창영 교수팀은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생산성과 재현성이 높은 멤브레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우선 원하는 크기의 구멍을 가진 탄소나노튜브를 센티미터(㎝) 수준으로 길게 만든다. 그런 다음 여러 개의 탄소나노튜브를 열경화성 플라스틱인 ‘에폭시(epoxy)’ 위에 가로 방향으로 가지런히 올려서 굳힌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폭시 덩어리를 세로로 얇게 잘라내면 동일한 나노포어를 가지는 탄소나노튜브 멤브레인을 수백 개씩 만들 수 있다. 제작된 멤브레인을 유리관 끝에 부착한 다음 분석할 용액에 담가 전압을 가하면 간단하게 시료를 분석할 수 있다.
연구팀은 탄소나노튜브로 만들어진 나노 포어 채널에 반복적인 전기적 자극(voltage ramping)을 더해 탐지 효율도 높였다. 전기 충격이 구멍 입구를 덮고 있는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동시에 채널 내부에 물을 채워 분자가 통과할 길을 만들어준 덕분이다. 기존에 알려진 막힘 현상을 이용한 연구는 탐지 효율이 10%에 그쳤지만, 이번에 제시한 탐지법에서는 33% 정도로 탐지 효율이 3배 이상 높아졌다.
또한 연구팀은 이온의 종류에 따라 탄소나노튜브 멤브레인에 나타나는 막힘 현상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분자가 물속에 녹으면서 생겨난 이온은 물 분자가 껍질처럼 둘러싸는데, 그 껍질 크기가 이온마다 달라 막힘 현상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응용할 경우, 나노포어 기반 탐지 기술을 DNA 센서로도 발전시킬 수 있다.
제1저자로 연구에 참여한 민혜기 UNIST 화학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단순한 원리로 제작했지만 다양한 시료를 손쉽게 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면 단분자 질량분석 기술과 같은 응용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창영 교수는 “탄소나노튜브를 활용해 제작한 나노포어 멤브레인은 물질에 따라 전기신호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 기술을 잘 응용하면 차세대 인간 유전체 해독기 개발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재료 분야의 저명한 국제 학술지인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에 7월 4일자로 게재됐다. 연구수행은 한국연구재단(NRF)의 기초과학연구사업과 미래창조과학부의 나노·소재원천기술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논문명: High-Yield Fabrication, Activation, and Characterization of Carbon Nanotube Ion Channels by Repeated Voltage-Ramping of Membrane-Capillary Assemb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