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을 갖는 물질이라고 하면 흔히들 ‘금속’을 떠올린다. 자석에 붙을 정도로 강한 자기적 성질(강자성)을 갖는 철뿐만 아니라, 자석에 붙을 정도는 아니라도 외부 강력한 자기장의 영향으로 자성을 갖게 되는 성질(상자성)을 가진 물질도 금속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소 기반의 ‘유기 물질’을 이용해 상자성을 띠게 만드는 방법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UNIST(총장 정무영) 백종범·유정우·박노정 교수 공동연구팀은 탄소 물질(유기물)이 상자성을 갖도록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탄소 구조체 내부에 구멍 형태의 결함(hole defects)을 도입하자 외부 자기장을 받고 자성을 띤 것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방법으로는 상자성을 띠는 탄소 구조체를 대량으로 합성할 수 있다. 또 이 물질이 자성을 띠는 이론적 원리도 규명했다.
물질의 자기적 성질(자성)은 원자 속 전자의 자전 운동인 ‘스핀(spin)’에 의해 결정된다. 스핀 방향이 외부 자기장 방향과 일치할 때, 우리가 흔히 아는 자석의 성질이 나타난다. 탄소 원자들이 육각형으로 잘 정렬된 ‘그래핀(graphene)’에서는 스핀 방향과 외부 자기장 방향이 서로 반대되므로 일반적인 자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개발한 새로운 합성법을 이용하면 그래핀과 유사한 구조의 탄소 물질이 상자성을 띠게 만들 수 있다. 탄소 물질의 합성온도를 낮추면서 대량 합성에 성공한 방식이라 향후 응용하기에도 유리할 전망이다.
백종범 교수 공동연구팀은 물질을 합성할 재료(전구체)로 ‘아세틸기가 달린 단량체’를 써서 비교적 낮은 온도(500℃)에서 반응을 유도해 ‘2차원 탄소 박막(graphitic carbon nanosheets)’을 대량으로 합성했다. 이때 탈수반응(dehydration, 반응 분자에서 물 분자, 즉 수소와 산소를 제거하는 반응)과 탄화반응(carbonization, 다른 원자를 탄소로 치환하는 반응)을 동시에 진행됐고, 그 결과로 ‘구멍 결함’과 ‘하이드록시기’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실험과 이론 분석을 통해 두 요소가 탄소 박막에 상자성을 가져온 원인임을 밝혀냈다.
제1저자로 연구를 주도한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정선민 박사는 “비교적 손쉬운 합성 조건에서 상자성을 갖는 탄소 박막을 대량합성할 수 있어 산업에 적용이 쉬울 것”이라며 “MRI 조영제로 유기물을 이용하는 연구는 물론, 합성한 물질에 구멍이 많다는 점(다공성)을 이용해 흡착물질이나 전극 재료 등 다양한 방면으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백종범 교수는 “탄소 물질의 자성 연구는 이론이나 계산 연구에 주로 초점을 맞춰 이뤄져 왔다”며 “이번 연구는 이론적 계산과 실증을 병행함으로써, 탄소 물질 내의 결함이 자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근본적으로 푸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술지인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 International Edition)의 VIP(Very Importnat Paper)논문과 속표지(inside cover)로 선정돼 8월 12일(화)자로 출판됐다. 연구 수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과 BK21 플러스사업, 우수과학연구센터(SRC), 기본연구 리서치 펠로우 사업, 기초연구실지원사업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