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에 필요한 나노 패턴을 만드는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 스스로 조립해 나노 패턴을 만드는 고분자를 이용하는 방식을 한층 개선한 것으로, 기존에 얻기 어려웠던 복잡한 무늬도 대면적으로 쉽고 빠르게 제조할 수 있다.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김소연 교수팀은 고분자 중 하나인 블록 공중합체의 박막 내 ‘흡착층(adsorbed layer)’을 조절해, 복잡한 나노 패턴을 대면적으로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블록 공중합체란 서로 다른 고분자가 하나의 고분자 사슬에 화학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가진 물질인데, 박막의 경우 다양한 나노 패턴을 새기는 게 가능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블록 공중합체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흡착층’에 변화를 줘 나노 패턴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냈다.
블록 공중합체는 고분자 사슬 간의 반발력과 인력이 작용해 스스로 나노구조를 만드는 특성(자기조립성, self-assembly)이 있다. 특히 박막 상태에서는 최신 나노 패터닝 기술로도 만들기 힘든 수~수십 나노미터(㎚, 10억 분의 1m) 크기의 미세한 점이나 선 등을 제조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에 필요한 나노 패턴은 기존 블록 공중합체로 형성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블록 공중합체를 활용해 이를 충족하려면 추가로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고, 비용과 시간도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
연구팀은 물/공기 계면에서 자기조립된 블록 공중합체를 기판에 옮겨, 수 나노미터 두께의 흡착층을 만들었다. 그 위에 새로운 블록 공중합체 박막을 만들자 전체 블록 공중합체의 자기조립 현상이 달라졌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흡착층이 나노 패터닝 과정에 가해지는 열이나 힘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으로 변한 것이다. 또 자연적 흡착층의 형성을 막아, 상부의 블록 공중합체 자기조립을 조절했다. 이로써 기존의 나노 패턴보다 더 복잡한 형태의 새로운 나노 패턴을 대면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제1저자로 연구에 참여한 김동협 UNIST 화학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고분자 박막 내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흡착층을 대신해 물/공기 계면에서 자기조립된 블록 공중합체를 흡착층으로 쓰면서 체계적으로 조절하면 원하는 나노 패턴을 얻을 수 있다”며 “고분자 박막 내 구조는 물론 고분자 박막 자체의 물성을 조절하는 다양한 연구에 기여할 것”라고 전했다.
김소연 교수는 “‘물/공기 계면 자기조립 블록 공중합체가 기판에 비가역적으로 흡착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최초이며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비가역적으로 흡착된 계면 자기조립 블록 공중합체는 향후 다양한 계면과학 연구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연구결과는 종합화학(chemistry, multidisciplinary) 분야 세계적 권위지인 ‘ACS 센트럴 사이언스(ACS Central Science)’에 9월 10일자로 게재됐다.
연구 지원은 한국연구재단의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 및 글로벌박사양성사업을 통해 이뤄졌으며, 박막의 나노구조 분석에는 포항가속기연구소의 UNIST-PAL 및 U-SAXS 빔라인이 활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