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얻는 반응에는 ‘촉매’가 꼭 필요하다. 기존에는 효율이 좋은 귀금속(백금)을 썼는데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백금을 대체할 물질이 꾸준히 개발되는 가운데 ‘원자 구조를 조절해 촉매 효율을 높인 연구’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UNIST(총장 정무영)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백종범 교수팀은 중국 연구진과 공동으로, 이리듐(Ir)-질소(N)-탄소(C)로 이뤄진 수소발생 촉매를 합성했다. 이 촉매는 수소 원자를 당기고 밀어내는 두 작용을 적절히 해내, 백금보다 낮은 과전압(overpotential)에서 수소발생 반응이 일어난다. 효율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촉매인 셈이다.
수소발생반응에서 촉매는 두 조건을 맞춰야 한다. 먼저 물속에 있는 수소 원자가 촉매에 잘 붙고(흡착), 수소 원자가 두 개 모여 분자가 되면 촉매 표면에서 잘 떼져야(탈착)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소발생 촉매의 수소 흡착(adsorption)과 탈착(desorption) 성질은 서로 반비례한다. 따라서 흡착과 탈착 반응 사이에 적절한 조율, 즉 ‘밀당’을 잘하는 물질이 좋은 촉매다.
연구진은 원자내 전자들의 모양과 에너지를 확인 할 수 있는 범밀도함수 이론을 활용한 계산을 통해, 질소와 탄소로 이리듐의 흡착 및 탈착 에너지를 조절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리듐은 백금을 대체할 차세대 촉매로 꼽히는 물질이다. 하지만 수소발생반응을 위한 수소 원자를 흡작하는 부분에 어려움이 있었다. 수소 원자가 이리듐 표면에 붙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높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리듐의 흡착 에너지를 낮추는 데 ‘질소와 탄소로 이리듐 원자의 전자껍질(Orbital)을 조절’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리듐 주변에 전자를 좋아하는 성질이 큰 질소와 탄소를 적절히 배치해 수소 원자를 당기는 힘을 키워준 것이다. 줄다리기할 때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당기는 힘이 더 커지는 원리와 같다.
연구진은 이 내용을 원자 내 전자들의 모양과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는 ‘범밀도함수 이론’으로 계산했다. 이론적 계산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가운데 공 모양의 빈 공간을 갖는 ‘이리듐–질소–탄소(IrHNC)’ 촉매를 합성했다. 공 모양의 플라스틱(폴리스타이렌) 입자 표면에 세 원소를 입힌 후 플라스틱을 제거하는 방식을 쓰자, 속 빈 원형의 입자 표면에 이리듐과 질소, 탄소가 균일하게 분포됐다.
이 촉매의 전기화학적 수소발생 성능을 산성(acid) 환경에서 확인한 결과, 백금 촉매(Pt/C)와 순수한 이리듐(Ir) 나노입자보다 훨씬 뛰어났다. 또 열분석장비로 살펴본 결과 귀금속인 이리듐 함량도 7% 정도로 확인됐다. 이리듐 역시 귀금속이지만 소량만 사용하면서 값싼 탄소와 질소와 섞어 고효율 촉매를 만들어낸 것이다.
제1저자로 연구를 주도한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펑 리(Feng Li) 박사는 “좋은 성능만 쫓아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방식에서 ‘전자껍질(오비탈)을 조절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촉매 효율을 높인 연구”라며 “이번에 쓰인 방식을 활용하면 다른 금속 기반의 촉매를 설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백종범 교수는 “질소나 탄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고가인 이리듐을 아주 소량만 사용해 고효율 촉매 개발에 성공했다”며 “상용화될 경우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는 저명한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9월 6일자로 게재됐다. 연구 수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과 BK21 플러스사업, 우수과학연구센터(SRC), 포항가속기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