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Graphene)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질소 도핑(Doping)’이 많이 쓰인다. 그래핀을 이루는 탄소 사이에 질소를 집어넣어 더 좋은 성질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기존에는 고온고압의 환경에서 진행하던 질소 도핑을 쉽게 하는 방법이 나와 주목받고 있다.
UNIST(총장 직무대행 이재성)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백종범 교수팀은 쇠구슬(Ball Mill)을 이용해 공기 중에 있는 질소기체를 손쉽게 분해하고, 질소가 도핑된 탄소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기존 질소 도핑법에는 고온고압의 환경이 필요했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면 낮은 온도와 압력에서도 질소 도핑이 가능하다. 쇠구슬끼리 부딪힐 때 나오는 에너지 덕분에 온도와 압력의 제약이 줄어든 것이다.
그래핀은 전기가 아주 잘 통하지만, 전자의 에너지 구조인 밴드 격차(Band Gap)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반도체 같은 전자소재에서 전류 흐름을 조절하려면 밴드 격차의 크기를 달리해야 하는데, 그래핀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래핀에 다른 물질을 도핑해 그래핀 내부 전자의 에너지 구조를 바꾸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도핑하는 물질로는 질소가 가장 많이 쓰인다.
그래핀에 질소를 도핑하려면 먼저 질소기체(N₂)를 질소원자(N)로 쪼개야 한다. 그런데 질소는 원자 간 결합이 매우 강해 증기 증착이나 플라즈마 분해처럼 고온고압의 환경이 필요했다. 또 이런 방식을 이용해 그래핀에 질소를 도핑할 경우 함유량이 1% 내외에 그쳤다. 따라서 질소의 함유량을 마음대로 조절하면서 반응 조건이 단순한 공정 개발이 필요하다.
백종범 교수팀은 저온저압에서 단순한 공정으로 질소를 도핑하는 데 ‘쇠구슬’을 이용했다. 통 안에 질소기체와 그래핀, 쇠구슬 여러 개를 넣고 강하게 회전해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통이 회전하면 쇠구슬끼리 부딪히면서 표면이 활성화되고,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쇠구슬의 탄성 에너지로 바뀐다. 이 에너지로 인해 일시적으로 팽창한 쇠구슬 표면에 질소 기체가 붙으면서 질소 원자 사이의 결합이 끊어지면서 분해된다. 팽창했던 쇠구슬이 압축하면 표면에 붙었던 질소가 원자 상태로 떨어져 나가는데, 이때 그래핀에 질소가 도핑된다. 통이 회전하면서 이런 반응이 반복되므로 그래핀에 더 많은 질소를 도핑할 수 있다.
제1저자로 연구를 주도한 가오-펑 한(Gao-Feng Han) 박사는 쇠구슬의 재질과 크기, 회전속도, 시간을 조절해 질소를 그래핀에 도핑하는 최적의 조건을 찾아냈다. 그 결과 40℃에서 1바(bar, 압력 단위)도 안 되는 압력으로 16%의 질소를 그래핀에 도핑했다.
백종범 교수는 “낮은 온도와 낮은 압력에서 간단한 공정으로 질소가 포함된 탄소체를 만드는 방식이라 대량생산에 적합하고 경제성이 높다”며 “손쉽게 따라할 수 있으므로 다양한 물질에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11월 1일(금)자 온라인 게재 후 출판을 앞두고 있다. 중국 지린대학교의 칭 지앙(Qing Jiang) 교수와 시앙-메이 시(Xiang-Mei Shi) 연구원도 이번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 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과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BK21 플러스사업, 우수과학연구센터(SRC), 창의소재발견프로그램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