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 ‘힉스 입자(Higgs boson)’를 발견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뛰어넘는 ‘차세대 고에너지 입자가속기’ 개발에 중요한 성과가 나왔다. 가속기 실험에 통상적으로 사용하던 전자나 양성자, 중이온이 아닌 ‘뮤온(Muon)’을 이용한 입자 가속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UNIST(총장 이용훈) 자연과학부의 정모세 교수팀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단, MICE(Muon Ionization Cooling Experiment)는 세계 최초로 ‘뮤온 빔(Muon Beam)의 이온화 냉각(Ionization Cooling)’을 실험적으로 구현했다. 관련 연구결과는 과학 분야 최고의 권위지인 네이처(Nature)에 2월 5일 온라인 논문으로 게재됐다.
정모세 교수는 “뮤온을 이용한 가속기 개발의 최대 난제였던 ‘뮤온 위상공간 부피 줄이기(Muon Cooling)’에 성공한 것”이라며 “‘차세대 중성미자 공장(Neutrino Factory)’과 LHC의 뒤를 이을 ‘차세대 경입자 충돌형 가속기(Lepton Collider)’를 개발하는 패러다임을 바꿀 중요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뮤온은 우주방사선(Cosmic Rays)이 대기권에 충돌할 때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입자로, LHC 후속 입자가속기에 쓰일 유력 후보 중에 하나로 꼽힌다. LHC에 쓰이는 양성자와 같은 ‘강입자(Hardon)’는 서로 강하게 상호작용하지만, 뮤온 같은 경입자(Lepton)는 상호작용이 약하고 가벼운 덕분이다. 이런 성질 때문에 힉스 입자의 정확한 성질 파악이나 새로운 고에너지 물리현상 탐구가 가능하다.
그런데 뮤온의 수명이 100만 분의 2초 정도로 매우 짧아 실제로 가속하기는 어려웠다. 실험에 쓰일 뮤온은 가속기 실험장치에서 강력한 양성자 빔을 표적에 때려서 인공적으로 얻는데, 초기에는 구름처럼 퍼져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뮤온 빔을 가속이 일어나는 공간에 집어넣기 위해서는 입자의 부피를 줄이고 입자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빔 냉각(Beam Cooling)’이라 하는데, 뮤온은 짧은 수명 때문에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빔 냉각이 어려웠다.
MICE 연구팀은 ‘이온화 냉각’이라는 1980년대에 이론적으로 제시된 방식을 적용해 뮤온 빔을 가속기에 입사시킬 수준으로 냉각하는 데 성공했다. 뮤온 빔이 에너지 흡수체(Energy Absorber)를 통과하면서 물질과 이온화 반응으로 에너지를 잃고 부피가 줄며 방향이 정렬되도록 한 것이다. 이 실험은 영국의 러더퍼드 애플턴 연구소의 ISIS 가속기 시설을 사용해 진행됐으며, 이온화 냉각을 이용해 뮤온 빔이 차지하는 공간을 이론에서 예측한 대로 제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한편 이번 성과는 전 세계에서 1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해 20여 년간 노력한 끝에 맺은 결실이다. 국내에서는 UNIST 연구진이 유일하게 공동저자로 포함됐으며, 정모세 교수와 그의 지도학생인 성창규 물리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이 가속관 개발과 빔 진단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지원은 한국연구재단 선도연구센터(SRC)사업을 통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