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TV를 만드는 대면적 OLED 같은 전자소자(electronic device)의 제작비를 낮출 기술이 개발됐다. 값비싼 진공 장비 대신 인쇄하듯 전자회로를 찍어 내는 ‘용액공정(Solutions process)’만을 써서 전자소자를 제작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UNIST(총장 이용훈) 자연과학부의 김봉수 교수팀은 연세대(총장 서승환) 조정호 교수팀, 서강대(총장 박종구) 강문성 교수팀과 공동으로 용액공정만 이용하는 ‘전용액공정(All-solution process)’ 방식을 통해 트랜지스터와 논리회로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용액공정에서 발생하던 재료 손상을 새로운 ‘가교제’ 개발로 막은 게 핵심이다.
용액공정은 전자소자를 구성하는 재료를 용매에 분산한 뒤, 잉크젯 프린터로 찍어 내듯 전자소자를 만드는 방식이다. 값비싼 진공 장비를 사용하는 것보다 저렴하지만, 용액공정 중에 소자를 만드는 재료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단점이다. 보통 전자소자는 서로 다른 재료를 층층이 쌓아 제작하는데, 용액공정을 이용하면 적층과정에서 재료가 서로 손상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용매를 제거하기 위한 고열 때문에 재료가 변성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용액공정만 사용해 완전한 소자를 제작하기는 어려웠다.
공동연구팀은 용액공정을 사용하면서도 소자를 이루는 다양한 재료를 보호할 수 있는 ‘가교제’(架橋濟)를 개발해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했다. 가교제는 마치 ‘다리’처럼 전자소자의 재료(고분자, 금속 나노입자 등)를 이으면서 단단히 잡아 준다. 그 덕분에 소자 재료들은 ‘똘똘 뭉쳐’ 적층 공정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기계적 손상에도 버티게 된다.
김봉수 교수는 “가교제는 일종의 부도체이기 때문에 많은 양이 첨가되면 전자소자의 성능이 저하되는데, 이번에 개발한 가교제는 분자 하나당 결합 가능한 입자가 네 개나 돼 소량만 첨가해도 원하는 성능을 얻을 수 있다”며 “기존 가교제 대비 1/10의 양만 첨가해도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다 전극, 절연체, 전하수송체 등과 같은 다양한 소자 구성 재료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동연구팀은 개발된 가교제를 이용해 전용액공정으로 트랜지스터를 만들고, 논리회로로도 제작해 성능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전자재료의 고유한 전기적 특성이 잘 유지됐고 논리회로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김봉수 교수는 “새로 개발한 가교제가 전자재료의 특성은 유지하면서 전용액공정을 가능케 했다”며 “무엇보다 전용액공정으로 전자소자를 제작할 돌파구를 열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성균관대, 한양대연구진도 함께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3월 23일(현지시각)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