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노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활성산소’는 배터리 수명과 성능에도 악영향을 준다. 고용량 리튬 이온 배터리용으로 도입한 전극 물질에서 활성산소가 나오면 목표한 성능이나 수명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체내 항산화 작용’에서 힌트를 얻어 해결한 기술이 개발됐다.
UNIST(총장 이용훈)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최남순·송현곤·곽상규 교수팀은 리튬 이온 배터리의 양극에서 만들어지는 활성산소와 배터리 내 부반응을 일으키는 물을 제거하는 ‘전해액 첨가제(MA-C60)’를 개발했다. 이 첨가제는 체내 항산화 효소처럼 배터리 내에 발생한 활성산소와 반응해 배터리 노화를 방지한다. 이 물질을 고용량 리튬 이온 배터리용 전해액 시스템으로 활용하면 더 오래 안전하게 사용하는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전기자동차를 비롯해 대용량 에너지 저장장치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리튬 이온 배터리의 용량을 키우기 위한 시도가 많다. 리튬이 많이 함유된 물질인 ‘리튬 리치(Lithium-rich) 양극’을 사용하는 게 대표적인데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리튬 리치 양극을 적용한 배터리의 충・방전 반응 중에 활성산소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활성산소는 전해액을 분해하고, 일산화탄소나 이산화탄소 같은 가스를 발생시켜 배터리의 수명과 안정성을 떨어트린다.
최남순 교수팀은 기존 전해액에 ‘말론산이 결합된 풀러렌(malonic acid-decorated fullerene, MA-C60)’첨가제를 넣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MA-C60는 탄소 원자가 축구공처럼 5각형과 6각형 구조로 이어진 풀러렌(C60)에 말론산이 결합한 물질이다. 이 물질을 전해액 속에 소량(1%) 첨가하면 전해질 용매 대신 활성산소와 반응해 전해액이 분해되는 것을 막는다. 게다가 전지 작동 초기에는 첨가제가 용매와 반응해 보호막을 만들기 때문에 양극 표면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송현곤 교수는 “우리 몸도 활성산소를 없애기 위해 다른 효소들이 활성산소와 반응하는 ‘항산화작용’을 한다”며 “배터리 내 활성산소도 다른 물질과 반응해 제거할 수 있도록 새로운 물질(MA-C60)을 첨가한 전해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곽상규 교수팀은 양극 표면에 보호막이 생성되는 원리를 계산화학을 이용해 분석했다. 곽 교수는“항산화 첨가제의 말론산 작용기가 전해질의 고리 형태 분자구조를 열어주고, 절단된 구조 끝에서 또 다른 전해질 분자가 달라붙어 양극을 보호하는 물질(올리고머)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첨가제는 배터리 내의 수분도 효과적으로 제거했다. 전지 작동 중에 만들어지는 수분은 전해질 염(LiPF6)를 분해해 배터리의 수명과 성능을 단축하는 산성화합물(HF)과 전극피막(LiF)을 만든다. 산성화합물을 전극 표면을 공격해 전지 용량을 결정하는 전이금속(리튬, 니켈 등)을 밖으로 흘러나오게 하고, 전극 표면에 생기는 피막은 전지가 과열되게 한다.
최남순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전해액은 전지에 부반응을 일으키는 활성산소와 물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양극 표면에 보호막도 형성하는 ‘다기능성 전해질’”이라며 “리튬 리치 양극뿐 아니라 다른 고용량 양극 소재에도 적용해 전기차 배터리와 같은 고용량 전지의 성능과 수명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는 재료 분야의 세계적인 저널 ‘어드벤스드 에너지 머터리얼스(Advanced Energy Materials)’에 4월 6일자로 공개됐으며,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표지(Front Cover)논문으로 선정돼 출판을 앞두고 있다. 연구 수행은 삼성전자가 시행하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