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제와 소독제, 살균제, 반도체 세정 작업 등에 쓰이는 ‘과산화수소(H₂O₂)’를 산업 현장에서 바로 만들 수 있는 ‘촉매’가 개발됐다.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과산화수소를 쉽고 빠르게 생산할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UNIST(총장 이용훈)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백종범 교수팀은 과산화수소를 생산하는 데 쓰일 ‘탄소 기반 고효율 전기화학 촉매’를 개발했다. 탄소 기반이라 저렴하고, 복잡한 공정이 필요 없어 현장에서(on-site) 바로 과산화수소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촉매 반응이 일어나는 활성 자리(active site)도 찾아내 학계에서도 의미를 인정받았다.
약국에서 소독약으로 흔히 보는 과산화수소는 각종 산업공정에 감초처럼 사용되는 친환경 산화제다. 또 전기차에 사용되는 수소연료전지에서 수소 대신 쓰일 가능성도 있어 앞으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재 과산화수소를 생산하는 ‘안트라퀴논 공정(Anthraquinone process)’은 복잡하고 규모가 크며 에너지 소모가 높아 ‘공장에서 대량생산’만 가능하다. 따라서 생산된 과산화수소를 현장까지 운반하고 저장하는 비용이 들며, 반응성이 높은 고농도 과산화수소를 관리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백종범 교수팀은 안트라퀴논 공정을 대신할 과산화수소 생산법으로 ‘전기화학적 방법’에 주목했다. 저렴한 탄소 물질을 기반으로 고효율 촉매를 개발해 ‘과산화수소 생성 반응((Oxygen Reduction to Hydrogen Peroxide)’을 유도한 것이다. 연구팀은 그래핀과 같은 얇은 탄소 기반 물질에 퀴논(Quinone), 에테르(Ether), 카르보닐(Carbonyl) 등의 작용기(Functional Group)를 붙이는 방식을 통해 촉매를 합성했다. 그 결과 97.8%의 높은 효율을 보이는 촉매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촉매 반응이 일어나는 정확한 ‘활성 자리’도 규명했다. 기존에 과산화수소 생성 촉매로 보고된 산화탄소 기반 물질에는 다양한 산소 작용기가 섞여 있어 ‘어떤 작용기가 촉매의 활성 자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퀴논, 에테르, 카르보닐 같은 산소 작용기를 따로 붙인 산화탄소 물질을 합성해 정확한 활성 자리를 분석했다. 그 결과 ‘퀴논 작용기가 많이 붙은 산화탄소 물질이 가장 높은 촉매 효율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가오-펑 한(Gao-Feng Han) 박사는 “과산화수소 생성에 중요한 활성 자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연구”라며 “실험과 더불어 밀도함수이론 계산법을 이용해 퀴논 작용기가 과산화수소 생성 반응(ORHP)에서 높은 촉매 활성과 매우 작은 과전압을 가진다는 걸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백종범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과산화수소가 필요한 현장에서 바로 사용 가능한 고효율 과산화수소를 촉매를 설계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과산화수소의 운송과 저장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각종 산업영역에서 과산화수소의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공동 교신 저자로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펑 리 (Feng Li) 연구조교수와 캐나다 캘거리대학교 사미라 시아로스타미(Samira Siahrostami) 교수가 참여한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5월 5일자 온라인에 게재됐다. 연구 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과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BK21 플러스사업, 우수과학연구센터(SRC) 프로그램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