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의 모습을 포착해낸 전자현미경 분석법으로 화재나 폭발 위험이 없는 전고체전지(All-Solid-State Battery)를 만드는 물질을 관찰한 연구가 나왔다. 생체분자를 손상하지 않도록 ‘얼려서’ 고해상도 이미지를 얻는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Cryo-EM, 2017 노벨화학상 수상)’ 기술을 ‘안전한 배터리’ 개발에 적용한 것이다.
UNIST(총장 이용훈)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이현욱 교수팀은 한양대(총장 김우승) 에너지공학과의 정윤석 교수팀과 공동으로 ‘황(S)화합물 고체 전해질’의 구조를 원자 단위에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 물질은 매우 민감해 전자빔(beam)을 쏘면 쉽게 손상되므로 일반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어려웠다. 이에 연구팀은 이 물질을 영하 170℃로 순식간에 얼리면서 공기와 접촉을 차단하는 새로운 방법을 써서 ‘손상 없이’ 관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리튬 이온 배터리에서 이온이 지나는 통로인 전해질은 주로 액체 상태다. 하지만 액체전해질은 폭발 위험성이 크다는 단점이 있어서 더 안전한 고체전해질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많다. 문제는 고체 전해질에는 원자들이 미로처럼 빼곡히 쌓여 이온이 잘 다니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이온 전도도’가 낮으면 배터리 용량과 수명이 떨어지므로 좋은 배터리가 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체 전해질의 복잡한 내부 구조를 분석해 이온이 지나는 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다른 물질보다 이온 전도도가 높아 고체 전해질로 가능성이 큰 ‘황화합물’은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하기 어려웠다. 황(S)이 전자현미경이 내뿜는 전자빔에 취약해 간접적 방법으로만 내부 구조를 봐야 했던 것이다.
이현욱 교수팀은 ‘황화합물 고체 전해질’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Cryo-EM)’을 도입했다.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 분석은 원래 살아있는 세포나 미생물을 관찰하는 방법인데 이를 배터리 물질 분석에 최초로 적용한 것이다. 액체질소를 이용해 시편을 영하 170℃로 순간 냉각하면 높은 에너지를 갖는 전자빔을 쏘아도 시편이 손상되지 않는다. 이때 시료는 대기와 닿지 않게 보호하는 ‘대기 비개방 분석법’을 활용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성분을 조합한 황화합물을 합성하고, 열처리 온도를 다르게 한 뒤 이온 전도도를 측정했다. 이 중 이온 전도도가 가장 높은 물질을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으로 관찰하자 ‘육각형 모양의 원자 배열’이 확인됐다. ‘대기 비개방 극저온 전자현미경 분석법’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이용해 기존에는 분석할 수 없던 물질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현욱 교수는 “‘대기 비개방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은 공기와 접촉을 차단하고 물질의 손상을 막는 기법이라 반응성이 높은 리튬 이온 배터리의 다른 구성요소를 관찰하는 데도 적극 응용될 것”이라며 “이는 가까이 이차전지 산업에 교두보 역할을 하고, 멀리 바이오 및 재료과학 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신진 및 중견연구자사업, 기후변화대응 기초원천기술과제 등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연구 성과는 나노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인 ‘나노 레터스(Nano Letters)’에 5월 5일자로 공개됐다.